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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6팔로워/늘보님] 루미너스x아실리
- 트위터
- 2015. 7. 13. 18:42
공백제외 2401자
루미너스(루나ts)x아실리
“선배.”
“엉?”
입 안 가득 초콜릿 묻은 막대 과자를 밀어 넣던 아실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미너스를 보았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비스듬히 턱을 괴고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아실리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너 숙제 한다지 않았냥. 왜 날 보고 있는?”
우물우물 입안에 든 것을 씹어 삼킨 아실리가 또 하나의 과자를 집어 들었다. 별다른 대꾸 없이 빤히 그녀를 바라보던 루미너스가 몽롱하게 두 눈을 깜박였다. 하나 더 입에 넣고 오독오독 깨물어 먹던 아실리가 슬쩍 루미너스의 표정을 살폈다가 다시 데구르르 시선을 굴려 과자가 담긴 접시를 바라보았다.
루미너스를 한 번, 과자가 담긴 접시를 한 번 바라보던 아실리가 울상을 지었다.
“이, 이씨. 치사하게 먹던 걸 뺏어먹으려고. 하나만 먹어, 시밬.”
“그다지 먹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과자 하나를 집어든 루미너스는 먹고 싶은 거 아니었으면 내려놓는 게 어떻겠느냐 짐짓 엄숙하게 말을 거는 아실리를 무시한 채 과자를 한 입 물었다. 한 입 한 입 과자가 사라질 때마다 아실리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루미너스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관찰하듯 뜯어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실리의 고개도 함께 모로 기울었다.
“선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같이 나갈 파트너 정했어요?”
“엥? 아니? 어, 그야 테리가 나한테 춤 가르쳐주는 중이니까 걔랑 가지 않으려낭.”
“부트 선배가요? 파티를요?”
“……헉 시발 그러겤.”
순식간에 납빛이 된 아실리의 얼굴을 빤히 보던 루미너스가 눈을 가늘게 접었다. 딜을 하죠. 특유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제안한 루미너스가 과자 하나를 더 집어먹었다. 아실리의 표정이 좀 더 일그러졌다. 아, 하나만 먹으랬잖아. 그건 계속 먹어도 된다는 우회적인 권유 아닌가요? 아냐, 시발! 찡찡대는 아실리를 잠시 바라보던 루미너스가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제 페어리 탐사를 도와주실 의향만 있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고요.”
“호, 호에엩.”
그런 래번클로스러운 행사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파트너 없는 트리위저드 챔피언이라니 죨라 쫄리겠군 하는 생각이 고스란히 아실리의 얼굴 위로 나타났다. 루미너스는 잠시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과자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한 번에 여러 일을 못하는 아실리는 루미너스가 과자를 훔쳐가는 것에 제대로 된 반응도 보이지 않고 루미너스를 빤히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루미너스는 한 마디 더 던졌다.
“선배가 데려가주지 않으면 전 그 파티에 갈 수 없거든요.”
“너 파티 좋아해? 그건 좀 의외인뎅.”
“파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지도 않아요. 그저 제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다신 없을 행사니까. 경험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인 자료가 되거든요. 대개의 일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 말이에요.”
“시밬 뼛속까지 래번클로스러운 발언이시네요 염병.”
아실리는 끄으응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루미너스는 감흥 없이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음, 보통 저렇게 하면 머리가 상하거나 손톱이 상하거나 많이 아프겠지만 아실리 선배 정도의 힘으론 별 상관없겠지. 가차 없이 결론을 내린 루미너스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실리가 고개를 들었다.
유달리 색이 선명한, 남부 휴양지의 바닷물 같은 청록색 눈동자가 비스듬히 아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 색 대비가 강렬한 루미너스의 더티 블론드가 구불구불 파도처럼 눈동자를 조금 가린 채. 이, 이 새끼도 누가 래번클로 아니랄까봐 생긴 건 졸라게 멀쩡하지. 아실리가 신중하게 고민했다.
“이, 일단.”
“네.”
“만일의 만일의, 아주 아주 만일의 경우지만 말입니다.”
“네, 선배.”
“시발 그럴 일 거의 없겠지만 테리 새끼가 파티에 관심이 있어서 나랑 파트너를 해줄 생각이 있었을 수도……! 아 시발 그 새끼 졸라게 인기 좋아서 파티에 관심 있었으면 분명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서도 실컷 파트너 신청 받고 승낙했겠지. 어무이 왜 저만 파트너 신청도 못 받고……? 요로코롬 미녀인뎅……? 요로코롬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선배, 진심이에요?”
“시발 이 새끼 졸라 너무하넼!”
아실리가 상 너머로 루미너스의 어깨를 퍽 쳤다. 물론 루미너스는 그다지 큰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아실리가 침울한 얼굴을 하며 본인의 손을 들여다보든 말든 루미너스가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제가 파트너 신청 했잖아요. 아무에게도 못 받은 건 아니네요, 뭐.”
“네놈 새끼는 의도가 불순하잖아 천하의 래번클로 자식앜…….”
“저는 선배가 예쁘지 않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아실리가 입을 헤 벌렸다. 그녀는 몹시도 의심스럽고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루미너스를 위아래로 훑어대기 시작했다. 루미너스는 초코 과자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이번엔 그것을 제 때에 눈치 챈 아실리가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물론 루미너스의 움직임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못한 행동이었다.
“아씨, 그만 먹으라고 새끼야!”
“선배는 예뻐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도 객관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실리의 입이 더 떡 벌어졌다. 과자 하나를 우물우물 조금씩 입에 집어넣으며 루미너스가 그녀의 벌어진 입에 과자 하나를 더 넣어주었다. 아실리는 일단 그것부터 얌전히 받아먹었다. 루미너스가 한 손으로 팔꿈치를 받치고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아실리는 그런 루미너스를 빤히 바라보며 일단 과자부터 씹어 먹으면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얘, 얘가 날 좋아했나? 언제부터? 드디어 내 모쏠 인생에도 봄날이 옵니깤?! 언제부텈?! 아니 그런데 왜 하필 래번클롴?! 그때 루미너스가 툭 내뱉었다.
“음, 그런 상태면요.”
나니.
“그런 상태?”
“음, 말 안 하고 안 움직이는 정도?”
“뭐이시밬.”
“입 열지 말라니까요.”
“…….”
“아, 딱 좋네요. 맞아요, 미녀. 객관적으로 얼굴은요. 자 하나 더 드세요. 아.”
“죽고 싶냐? 그런 농담은 죽음을 부른단 거 아니, 루나얌.”
“다행이네요, 안 죽겠어요. 농담이 아니었거든요.”
“…….”
시벌 래번클로 같은 래번클로의 래번클로 새끼……. 아실리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 와중에 루미너스가 과자를 입 앞에 내밀어주자 그녀는 일단 그것을 받아먹었다. “사실 미소녀라기보다는 애완동물 느낌이죠.” 루미너스의 마지막 말에 결국 아실리는 상 아래로 그의 정강이를 거하게 걷어찼고, 물론 언제나와 같이 효과는 미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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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타반x아실리/Bori님]
- 트위터
- 2015. 7. 5. 04:42
*요청 상황 : 아실리가 타임트립하고 라스타반이 아모텐시아를 마신다면
“아, 미쳤어. 시발 진짜 미쳤어.”
긴 백금발이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소녀가 종종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손톱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풍성한 속눈썹을 다급히 깜박거렸다. 햇살 같은 속눈썹이 나풀거릴 때마다 보석 같은 잿빛 자안이 드러났다가 가려졌다. 그녀는 잠시 자리에 서서 다시 멍하니 손에 들린 모래시계 목걸이를 꺼내 봤다.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에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다.
“어, 어떻게 시발 이걸 존나게 돌릴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나새끼는 제정신이었던 걸까? 나년 쥬거라. 쥬거, 시발 쥭자……. 지금 대체 몇 년이야? 악 앜 앜 아악 아아악!”
초유의 사태에 부들부들 떨며 아실리는 으아아아 하고 얇고 예쁜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듯 흔들어댔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3학년 때 썼다던 모래시계 목걸이랑 비슷하고 좀 더 강력한 마법 물품을 어쩌다 보니 맥고나걸에게서 이번엔 그녀가 받게 된 것이었다. O.W.Ls는 막 끝났지만 마법부 사건으로 인해 중요한 시기에 많은 공부를 못 했으니 방학 동안만 조심스럽게 쓰고 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다른 기숙사 학생이지만 아실리의 분전을 응원한다고 했다.
원래 헤르미온느가 쓰던 모래시계 목걸이는 당연 헤르미온느에게 갔을 테지만 난 없어도 되는데……. 아니 그야 난 여태껏 빗자루 빼면 전부 O였고……보통 가산점도 좀 받았고……O.W.Ls도 당연 그랬고……. 그만큼 들을 과목 수도 많아졌으니 맥고나걸 교수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실리의 두 눈에 다시 지진이 일어났다.
왜 시발 병신 같은 나년은 그걸 돌리고 졸라 돌리며 꺄핳ㅎ핳핳하!! 하고 미친 짓을 했을까!! 시발 덤블도어 손 때문에 아무리 정신이 나간 상황이었어도 그렇지! 돌 거면 차라리 내가 돌아야지 돌릴 게 없어서 그걸 돌려!!! 어, 어떻게 돌아가면 되지?! 어떻게 돌아가면 되는 거였지?! 존나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도시떼 손나 코토! 히도이요! 히도이!!
“아아아앙아아악 으아아아악 시바아아알 시바아아아아알…….”
한동안 제자리에 주저앉아 정체 모를 괴성을 뱉던 아실리가 부스스한 머리칼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렇게 잡아당겼지만 그녀의 머리칼은 멀쩡했다. 모근보다는 거지같은 손힘 덕분이었다. 아실리는 잠시 고마운 듯 짠한 시선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후후……좋은……좋은 플레이였어 혀니쨩……. 하고 바닥에 검지로 낙서를 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지?”
갑자기 들려 온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하마터면 바닥에 시계 목걸이를 떨어트릴 뻔 했다. 헤르미온느의 것과 달리 동그란 시계가 제대로 달린 목걸이는 간신히 그녀의 손 안에 안착했지만 대신 아실리가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아, 아야. 아야야 미친…….”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던 그녀는 굽혀져 있던 다리를 급하게 피느라 자기 치마를 자기가 밟고 그대로 앞으로 다시 넘어져 버렸다. 시계를 감싸느라 자신은 감싸지 못한 그녀가 악! 하고 몹시 아파 보이는 비명을 내질렀다.
바둥거리며 땅을 짚던 그녀의 팔을 누군가가 잡아 올렸다. 아주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려던 그녀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준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전 말을 걸었던 목소리 만큼이나 낯익은 얼굴이었다. 얼마나 낯이 익냐면, 그러니까, 어.
“알고 지낸 지 오 년에 한 집에서 산 지 약 이 년 정도 된 어떤 쓰레기의 얼굴이랄지…….”
“괜찮은 거니?”
“아 아닙니다 시발……. 저기 제가 지금 머리가 띠용띠용해서 그런데……혹시 지금은……1940년대 정도……? 아니면 그 근처라든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래번클로의…….”
톰 마볼로 리들이 눈썹 끝을 꿈틀 했다. 래번클로 교복을 입고 있긴 한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뭔가의 미심쩍음을 놀랍도록 빨리 캐치한 아실리가 벌떡 일어났다.
“꺄후우 감사했습니다아앗! 그럼 전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아앗!”
유심히 살피느라 힘을 전혀 주고 있지 않던 리들의 손을 후딱 뿌리친 아실리가 정원의 돌 책상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시발 얼마나 돌린 거야 미친 나색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친 뭐처럼 정신없이 호그와트를 내달리던 그녀는 언제나처럼 함정 계단에 한 발을 푹 빠트리고 말았다. 꺄아욱앜! 왜, 왜 시발 이렇게 오래 전인데 함정 계단은 고대로 있는 거고 난 또 여기에 빠지는 거고!! 후하후하, 진정하자! 일단 진정하고 발부터 빼야 해! 이젠 동공에 지진이 멈출 날이 없어서 거의 바들바들 떨리는 작은 동물 같은 눈을 한 채 그녀가 안절부절 못 하는 손놀림으로 함정계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렸다.
“저런, 아가씨. 내가 좀 도와줘도 될까?”
“네!! 시발 도와주세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졸라 도와주세요!!! 어흐으엉어으엉!!”
이젠 온갖 멘붕과 혼란과 억울함과 온갖 감정으로 범벅되어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쑥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녀는 잠시 한 발 뒤로 물러섰던 은인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눈이 또다시 격하게 떨렸다.
“허가는 받았지만 몸에 손을 대서 미안하단다. 조심히 다녀야지.”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말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선이 곱고 우아하게 생긴 미인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굵게 웨이브 진 검은 머리칼이 그의 얼굴 옆으로 잔머리처럼 흘러내렸다.
“아, 아니씨발 외할아버지씨……?”
“응?”
그제야 아실리의 얼굴을 제대로 봤던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입 속으로 안, 하는 한 글자의 이름을 뱉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조금 더 기울였다.
“래번클로니? 그런 얼굴은 본 적이 없는데. 차라리 안드라스의……. 스티미스트 가에 이런 얼굴이……. 아. 눈이.”
“허어억 아니 시발 저는 스티미스트는 아니고 아니 그게 스티미스트긴 한데 아니 그러니까 어 어 시발 래번클로……래번클로도 맞긴 한데 그렇다고 또라이는 아니고 어 그리고 지금은 래번클로가 아니기도 하고……?”
극심한 멘붕 탓인지 혀가 꼬였다. 아실리가 어버버버 하다가 결국 어으으으어어어 흐어어어 하는 기이한 소리를 흘리기 시작할 무렵에 아실리보다 머리 하나가 큰 소년이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반쯤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흘러내렸던 시계 목걸이를 다시 쥐어 그녀의 손에 제대로 들려주며 다정스레 웃었다.
“그래, 진정하렴. 미래에서 온 손님이로구나.”
아니 씨발 역시 래번클로. 아실리의 동공 지진은 더더욱 격해졌다.
**
일단 아실리를 학생회 회의실에 데려가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쥐여 준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한참 후에야 진정한 그녀에게서 사정 설명을 들었다.
안드라스 스티미스트의 손녀이며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외손녀라는 말에 그는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주섬주섬 떠들던 아실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늦게야 눈치 챈 그가 “계속 말해 주렴.”하고 다정스레 덧붙인 덕에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 시발, 래번클로지만 치유계……! 아실리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한 채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를 마저 설명했다.
라스타반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괴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그 시간에 돌아가는 두 가지 마법 물품에 대해 떠올렸다. 하나는 ‘사용자’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고 하나는 ‘주변’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 아마 아실리가 말한 ‘모래시계 목걸이’가 전자일 테고 지금 그녀의 손에 들린 ‘시계 목걸이’가 후자임에 분명했다. 시간의 범위는 모래시계 목걸이가 조금 더 섬세했고, 시계 목걸이의 잠재력이 더 컸다.
그는 그것의 시간을 되돌리는 방식도 알았다.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모래시계 목걸이가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시계 목걸이는 분명 ‘시계 바늘’이 다 돌기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즉, 제자리로 돌아가서 시계 바늘만 섬세하게 움직이며 원래의 ‘형태’를 만들어주면 된다. 물론 미래로 돌아가는 방향을 향해 돌려야겠지만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움직이는 눈금 없는 시계의 방향만 봐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실리, 얘야.”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는 뭔가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주머니의 잡동사니들을 꺼내던 아실리 스티미스트를 발견했다. 혼자 궁시렁궁시렁 뭔가 중얼거리면서 주머니를 탈탈 터는 모습이 꽤나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라스타반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턱을 괴고 장난스레 눈을 깜박였다.
안드라스를 똑 닮은 얼굴인데 신기하게도 여성스럽게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눈매는 반박할 수 없이 라스타반 본인과 똑같았다. 마치 그의 이상적인 모든 것을 한 몸에 지닌 안드라스 같았다.
안드라스가 여자였다면 그는 분명 안드라스를 사랑했을 것이고, 그와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드라스가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랬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안드라스도 언젠가는 증오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것은 끝까지 사랑으로 남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본인의 이해 못할 감정체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히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소녀는 어떠한가? 안드라스의 모든 것을 지녔으면서도 라스타반 본인의 모든 것을 지녔다. 그녀는 기안사르의 이름을 잇지도, 그것을 잇게 하지도 않았으며 기안사르의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상 기안사르 집안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눈치였고, 듣자 하니 라스타반 기안사르와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카렌듈라라는 그의 딸은 철이 들기도 전에 안드라스의 손에 키워졌다고도 들었다. 나는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군. 그렇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새삼스러운 감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죽었다지만, 그는 그를 알던 그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만큼 오래 생존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가 조금 웃었다.
그는 눈앞의 소녀를 보고야 조금 그 피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정말, 정말로, 기안사르의 그 어떤 것도 물려받지 않았다. 오로지 보석 같은 보랏빛 눈동자만이 기안사르의 것이었지만, 그건 마치 안드라스와 같은 따뜻하고 다정한 빛으로 가득해서. 기안사르의 피를 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기안사르의 사람은 아니어서.
“엥……. 왜 보세욥……?”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는 저런 표정은 안드라스의 것이라기에도 낯설지만.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조금 즐거워졌다. 그래서 그녀를 돌려보내기 전에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내 손녀라고. 맞아. 나는 손녀까지 남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건강해지고, 그만큼 오래 산다고. 그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유도 없이.
“많이도 들고 다니는구나. 뭘 그리 가지고 다니는 거니.”
“엥. 아, 이건 카톡노트라고 저희 저택에 얹혀사는 무지무지 쎄고 그보다 더 성격 나쁜 녀석하고 멀리 있을 때 떠드는 용도인데……. 어 이거 되려나, 여기서도.”
잠시 그것을 훌훌 넘기던 아실리가 밝아진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그녀가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넣는 사이 라스타반은 다른 잡동사니들을 만지작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그 중 작은 약병을 발견했다. 뚜껑을 까서 냄새를 맡으려는데 아실리가 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라스타반이 고개를 들었다.
“그거 거기 있었구나!”
“괜찮다면 뭔지 알려주렴.”
“아, 별 건 아니고 아모텐시아예욥. 방금 말한 그 쓰레기 새끼가 자꾸 패악질 해서 말 안 들으면 먹여볼까 해서 만들어본 건데 그 새끼한테 아모텐시아 쓰는 건 졸라 잔인할 것 같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결국 못 쓴 거랄지…….”
아실리가 좀 민망한 말투로 웅얼거렸다. 라스타반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모텐시아.”
“네.”
“사랑.”
“네넹.”
“사랑이라…….”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실리의 시선에, 잠시 말이 없던 라스타반이 사르르 웃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쓰지 않을 거라면, 그리고 혹시 괜찮다면 내게 주겠니.”
“엥? 왜욬?!”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조금 궁금하거든. 흥미롭단다.”
“엩 아니 이 분이 무슨 래번클로스러운……아 아니 래번클로시구나. 시벙 왜 치유곈데 래번클롴……?”
무지 억울하다는 투로 불평을 늘어놓던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라스타반의 손에 약병을 올려주었다. 어차피 안 쓸 거기도 했고, 그녀는 그가 지금 당장 그것을 시험해 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 없이 약을 넘길 수 있었다. 아차차, 저거 좀 묵은 거라 효과 개 쎌 텐데.
“저기, 외할아버지씨, 그거 좀 묵은 거라 개 쎌……. ……. 저기, 지금 뭐 드신……?”
“…….”
약을 한 입에 털어 넣는 것을 목격한 아실리가 입을 헤 벌렸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라스타반은 잠시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는 낯선 듯 익숙하고, 또 익숙한 듯 낯설고, 행복한 듯 슬프고, 즐거운 듯 괴로우며, 달콤한 듯 쌉싸름한 약 냄새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어, 저기, 시벙, 외할아버지씨. 다이죠부하십니까…….”
아실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맴 돌았다. 걱정스레 그를 보던 아실리는 순간 라스타반이 몹시 괴로운 신음을 뱉으며 비틀거리자 화들짝 놀라서 일어섰다. 라스타반이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눈가를 눌렀다.
“미안, 미안하구나.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윽……. 잠시만……. 내 몸에는 무리였던 모양이야…….”
그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왼쪽 가슴을 쥐어뜯듯 긁어냈다. 그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공기에서 피 맛이 났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렇게 심각한 발작은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라스타반이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누르며 다시 한 번 숨을 내쉬었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답답했다. 그는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갈증과 고통에 시달렸다. 이쯤 되자 단순히 사랑의 묘약이 준 감정적인 것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챈 아실리가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상을 돌아 그에게 다가갔다.
라스타반은 그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괴로워졌다. 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손을 내저으려는 순간 그 손을 무언가 따뜻한 손이 잡아챘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태양 같은 백금발이 그의 시야를 햇살처럼 뒤흔들었다.
“에, 저기, 억, 저기. 병동 갈까욥……?”
아, 눈앞이 어지러워. 눈이 부셔서. 그가 반사적으로 조금 인상을 찌푸리자 아실리가 더더욱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라스타반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지팡이를 꺼내 들고 뭔가 주문을 외우려다가 멈칫했다. 저주 해주 주문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지금의 문제는 뭐지?! 뭐가 문제인 거지?! 문제를 알아야 마법을 쓰든 말든……?!
아실리가 다시 멘붕하는 사이 라스타반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키며 그녀의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이때껏 이것을 모르고 살았다. 어떻게 이것을 모르고 살았나. 어째서 이것을 모르고 살아야만 했나.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감격이 그의 폐부와 심장을 짓누르며 치밀었다. 그 순간 아실리의 손이 순간 눈앞을 휘휘 휘저었다.
“에, 저기, 대답 좀……. 의식 있으십니까……. 저기 저 지금 조상님을 살해한 건가요……. 미래의 나 다이죠부……?”
라스타반 본인의 것과 똑같은 보랏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가장 값비싼 보랏빛 물감을 물에 잔뜩 풀어 놓고 재를 한 줌 던져 넣은 것 같은 빛깔이었다. 라스타반은 무언가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 지 알 수 없어졌다. 그렇다, 그는 이때껏 이것을 모르고 살았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어째서. 어째서 그는 그리 살아야만 했을까. 배우지도 학습하지도 못 하고.
아실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녀가 황급히 손을 들어 라스타반의 뺨을 닦아주었다. 어딘지 멍하고 표정 없는 얼굴 위로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발 내가 지금 진짜 사람을 죽일 것 같아……! 아모텐시아로 독살……! 현실에서도 사람 죽인 적이 없는데……! 아실리가 안절부절 못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그녀는 무언가에 폭 안겨야 했다.
“엨.”
아실리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라스타반이 그녀의 어깨에 뺨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실리의 몸이 딱 굳었다. 그녀는 현실에서나 이곳, 게임 속에서나 아무리 아직 소년 티가 난다지만 다 큰 사내가 이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남자사람소꿉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 친구가 엉엉 울었지만 지 현도 엉엉 울었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울음이었다.
라스타반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마치 무언가 보답 받지 못할 것을 찾는 사람처럼 아실리의 마른 등을 끌어안으며, 옷자락을 긁어내듯 손에 쥐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조심스럽게 몰아쉬는 숨결이 목덜미에 느껴졌다. 워, 원래 아모텐시아가 이런가……?! 당황스레 눈을 굴리던 아실리는 반사적으로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토닥토닥 두드리듯 쓸어주었다.
교복과 망토에 가려져 있어서 몰랐지만, 그는 지 현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아실리조차도 실제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에, 저기, 어, 시발. 제가 약을 뭔가. 잘못 만들었나 봐욬. 죄송함닼……. 이런 실수 자주 안 하는데……그래도 괜찮으신 거졍……. 일단 아까 안 좋으셨던 건 괜찮아지신 거졍……?”
아실리는 눈앞에 흩어져 길고 굵게 굽이치는 검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어린 아이 달래듯 쓰다듬어주었다. 라스타반이 소리 없이 잠시 웃었다. 안드라스는 언제나 다정하지만 무뚝뚝했고, 누군가가 그를 달래기 위해 쓰다듬어주는 것은 인생에 처음이라. 그는 눈물 젖은 얼굴로 조금 웃어버렸다. 그는 아득하고 광막한 애정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아모텐시아든, 아니면 자기위안이든.
그는 대충 이야기를 끝냈을 때 아실리가 다시 목에 걸었던 시계 목걸이의 줄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아실리가 잠시 당황한 눈치였지만 본인이 착각한 줄 알았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라스타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줄 뿐이었다. 라스타반은 그것이 악한 애정임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실리 스티미스트에게 시계 목걸이의 사용 방법을 알려 줄 생각도, 그녀를 본래의 시대로 돌려보낼 생각도 더 이상은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는 아실리가 필요해졌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는 그것이 괴롭고도 기뻤다. 끔찍하게 행복했다. 그는 참으로 기안사르였다. 그가 증오해 마지않는 만큼, 그가 혐오해 마지않는 만큼.
딱 그만큼.
그것이 이 순간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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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7. 5. 02:56
*루미너스&루나 쌍둥이
삐비비빅, 시끄러운 소리의 알람과 함께 루나 러브굿이 번쩍 눈을 떴다. 기분 좋은 햇살이 콧잔등 위를 맴돌았다.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그녀는 한참 후에야 무엇을 위해 일찍 알람을 맞춰 놨는지 깨달았다. 플럼버의 먹이를 줄 시간이었다. 플럼버는 나흘에 한 번씩 일찍 밥을 줘야 했다.
그녀의 방학은 언제나 똑같았다. 주섬주섬 일어나 산발이 된 머리를 더더욱 헤집으며 몸을 뒤집어 기듯이 일어서던 루나 러브굿의 눈앞에 청록색 눈동자가 아몬드처럼 빛났다.
갑작스러운 접근이었다. 루나 러브굿은 눈을 깜박이다가 조금 머리를 뒤로 물렸다. 부스스하고 곱슬곱슬 흔들리는 짧은 금발이 루미너스의 귀를 덮고 흔들렸다. 루나 러브굿은 그제야 함께 낮잠을 자던 쌍둥이가 옆에서 사라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먹이는 줬어.”
“물은?”
“당연히. 부보투버가 많이 컸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루미너스가 루나의 뺨에 입을 맞췄다. “좋은 아침, 루나.” 루나 러브굿도 그에게 회답에 반대쪽 뺨에 가볍게 비주를 했다. “좋은 아침, 루미. 비주는 입술로 하는 게 아니야. 그건 마르할들의 못된 습관이라고.” 루나 러브굿보다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대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몽롱한 눈을 한 루미너스가 꿈꾸듯 멍한 어조로 대꾸했다. “알아.”
그러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그의 새하얀 얼굴을 빤히 보던 루나 러브굿이 다시 드러누워 머리맡의 초콜릿을 집어 껍질을 깠다. 루미너스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초콜릿을 입으로 받아먹었다.
“나 그거 완성 했어.”
“볼류크리의 계보? 그건 내가 어제 하고 잤어.”
“아, 그래? 다행이야. 난 쿠왈의 교배식을 찾아냈거든.”
“오.”
루나 러브굿이 감탄하듯 입을 벌리자 루미너스도 꼬물꼬물 손을 뻗어 초콜릿 껍질을 까 그녀의 입에 하나 넣어 주었다. 이걸 달라고 한 건 아니었어. 루나 러브굿이 단조롭게 대꾸하며 우물우물 그것을 먹었다. 그런 식으로 몇 개의 초콜릿을 앉은 자리에서 까먹던 그들은 계단을 올라왔던 제노필리우스가 아침부터 초콜릿만 까먹지 말라고 호통을 치고야 봉지를 여며 다시 머리맡에 두었다.
“그런데 사실 우린 어제 뇌의 당분을 너무 많이 사용했어.”
“맞아. 두뇌 활동에 필요한 당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벌인 게 패착이었지.”
“하나씩만 더 먹을까.”
“그래, 그 정돈 아빠도 이해해 주실 거야.”
물론 그들의 초콜릿은 하나에서 끝나지 않았고, 아이들이 안 내려오자 다시 올라 왔던 제노필리우스 러브굿은 결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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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7. 5. 02:31
*마법사 테리x검사 테렌시아(패러렐)
색이 진한 금발은 깊은 곳으로 갈수록 어두워져서, 정수리에 다다르면 거의 검은 색으로도 보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날렵한 인상 위로 길고 선명한 눈매가 그린 듯 유려했다. 테렌시아 부트에게 그것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얼굴이었다. 남자가 시선을 아래로 조금 깔았다가 다시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테렌시아 부트는 그 새까만 눈동자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당신은 누구지?”
원래부터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렌시아는 낯선 사내가 자신의 집 안에 서 있는 순간에조차 몹시도 덤덤하게 질문했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호신용 총구를 바라보며 건조하게 고개를 기울이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 자식들이 진짜…….”
“대답해.”
테렌시아가 서늘하게 내뱉는 순간 남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테렌시아 부트는 신중하게 방아쇠 위에 검지를 얹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려 마른세수를 했다. 테렌시아는 방금 전 남자가 한 행동과 똑같이 눈썹을 꿈틀 했다.
“당신 뭐 하는 인간이야?”
“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남자가 몹시 당당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것은 위협의 목적이라기보다는 간단한 정보의 전달에 목적을 두고 있었는데, 그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테렌시아 부트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또렷하고 우아한 얼굴에는 그런 감정의 동요가 엿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총에서 한 손을 내려 슬쩍 흘러내리던 목욕 가운을 고쳐 올렸다. 그리고 다시 안정적으로 총을 받쳤다.
“미안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힘없는 여성이고, 당신은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제멋대로 침입한 괴한이지. 법적으로는 내 입장이 우위야. 죽이는 건 좀 문제겠지만 방어 수단을 갖출 명목은 충분해.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
“날 쏘면 너도 죽을 걸.”
“지금 협박까지 하겠다는 건가?”
남자는 표정 변화 없는 건조한 얼굴로 잠시 테렌시아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대화를 하지. 우리에겐 대화를 할 시간이 필요해.”
“야심한 밤에 처녀 혼자 사는 집에 난입한 괴한치고는 그것 참 신사적인 투로군.”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한다. 미안하게 됐어. 빌어먹을 친구 놈들이 날 이곳에 보내 버렸거든.”
“누구의 사주지?”
“누구의 사주도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너 자신의 뜻이다.”
테렌시아 부트가 미간을 좁혔다.
“말장난 칠 생각 없어.”
“말장난? 글쎄.”
남자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의미 없는 나뭇가지를 휙 고쳐 쥐더니 가볍게 툭 휘둘렀다. 긴장한 채 그를 겨누고 지켜보던 테렌시아는 휙 공중으로 떠오른 총을 보면서 아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장 세 걸음 크게 물러서며 옆에 세워져 있던 골프채를 잡았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대화를 나눌 상황을 조성했지. 무기 내려 놔. 지금 몹시 당황했다는 것 알아, 테리. 나는 너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 그리고 우리가 같이 알아내야 할 것도 있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군.”
“이름까지 알고 찾아왔다면……게다가 그건 내 친구들만 아는 애칭이야. 대체 누가.”
“아. 애칭이었나. 미안. 확실히 여자면 테리가 이름은 아니었겠지.”
“무슨.”
“테레사인가? 테레지아?”
“개소리 지껄일 필요 없어.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인가.”
테렌시아가 싸늘하게 씹어 뱉었다. 남자는 잠시 말을 고르는 것 같았지만, 이내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하고 다시 아까 전의 말을 반복했다. 그는 ‘보내줄 거면 제대로 보내든가’ 따위의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다가 격한 욕설을 입에 담았다. 테렌시아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이한 익숙함에 조금 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저 남자가 말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방식, 대화를 시도하는 방식에 대해 몹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법사다.”
“뭐?”
“다른 세계의 너이기도 하고. 아, 이름은 테리 부트야. 다행히 애칭은 똑같은 모양이군.”
“하?”
“널 구하러 왔어, 테리. 네가 죽으면 많이 곤란하거든.”
남자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그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건조한 얼굴이었지만 이 순간 민망해 하는 기색은 분명히 느껴졌다. 테렌시아는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가차 없이 비웃으면서도 그가 어째서 민망해 하고 있는지를 이해했다. 그녀가 천천히 대꾸했다.
“내가 뭐라고 말할 거라 생각해? 난 그렇게 비이…….”
“제길, 끔찍해. 내가 하는 말이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들린 적이 없어.”
“…….”
“똑똑히 들어, 테리. 아, 다시 한 번 사과하지. 나는 테리라는 호칭밖에 모르거든. 어쨌든 이 세계의 네가 몹시 불합리한 이유에서 일주일 내에 사망하게 될 것이며, 그게 운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인해 벌어지기 때문에 너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의 너도 영혼과 정신에 큰 타격을 받아. 나는 그런 미래에서 왔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미래로부터 메시지를 전달 받은 너와 동시대의 테리 부트다. 유감스럽지만 그래서 일을 비틀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고 말이야. 내가 죽으면 너도, 네가 죽으면 나도 몹시 곤란해지겠지. 어쩌면 함께 죽어버릴지도 몰라. 물론 뭔가의 우연적이고 서로 다른 사고에 의해.”
“무슨 개소리야?”
“특히 마법사의 영혼과 정신은 몹시 민감하고, 시간과 차원에 대해서도 독립적이질 못하거든.”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지? 허황된 소리만 늘어놓으며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지껄여.”
남자가 별안간 표정을 무너트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두 손 모두 들어 올린 상태에서 지팡이만 까딱했다. 테렌시아의 손에 들려 있던 골프채를 비롯해 무기로 삼을 만한 것들이 전부 천장에 휙 달라붙어 버렸다. 테렌시아의 검은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 남자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비스듬히 턱짓을 했다.
“가운 고쳐 입어, 테리. 여자인 내가 어떤 몸을 지니고 있는지 같은 건 궁금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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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웬님 0ㅁ0] 호그와트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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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6. 18. 16:59
그 세계라고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고, 전쟁이 없지도 않고,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야. 불행은 분명하게 그곳에도 존재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투덜거리며 살고 있어. 하루에도 수십씩 어처구니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지.
그렇지만 뭐, 만일 그 세계에서 태어나고 살았다면 네 고민과 괴로움은 대학 가는 고민, 친구랑 싸운 거, 시발 점수가 쓰레기로 나온 거, 그리고 또 어쩌면 나처럼 남의 세계에 떨어져서 존나 모르겠다 그냥 다 때려 치고 싶다 하는 고민이었을 뿐일 수도 있어.
……여하튼 그래도 분명 나름대로 행복했을 거야. 살아가는 그 순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수 있어도, 분명 나중에 돌아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야. 그리고 난 너도 지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답. 어디서 어떻게 살든, 견디고 살다 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행복해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잘 들어. 어차피 이젠 주인 없는 이름이 될 테니까. 이 이름을 너한테 줄게.
애쉬.
이젠 네가 애쉬야.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Spin-off]
이름 없는 순간
인생 시발.
입에 넣던 숟가락에서 줄줄줄 된장찌개가 흘러내렸지만 뭐 닦을 새도 없었다. 아니 시발 이게 뭐지. 후비후비. 멍하니 귓구멍을 후벼봤지만 그런다고 들은 사실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아니 아버지 이게 뭔 소리요? 아니 시발 눈구멍이 문제구나. 아니 아버지 이게 뭔 짓이요? 밥상머리에서 멋대가리 없는 나무작대기 툭 휘두르더니 물을 허공에 띄우기 있기 없기. 도르셧나. 아니 씨발 나새끼 지금 제정신인갘?
“이건 둘 중 하나야.”
“뭐.”
“아빠가 도르셧거나 내가 돌았거나.”
“놀랍네, 오빠.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너희 좀 더 스펙터클하고 어린애다운 반응 못 보이겠냐.”
어린애다운 상황이어야 어린애다운 반응을 보여드리졍.
“이게 바로 및친 자각몽? 루웃씨드 드리이임? 우리 아빠가 마법사라니! 하하헣헣깔깔?!”
“너도 마법사야.”
“끼에에에엑!”
결론이 났다! 우리 아빠가 도르신 거로!!!
#1. 마법사의 돌과 이름 없는 순간
아빠는 정말 마법사였다. 이게 시발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나도 시발 존나 당황스러워. 밥상머리에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 여하튼 웬 조류가 난입해 편지봉투를 된장찌개에 떨군 직후 아빠는 마른세수를 했고, 괴상한 나무작대기를 꺼내들더니 물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마치 무슨 자기가 아서 왕의 후손이라도 된다는 말을 하듯 위풍당당하게 “여보, 얘들아. 난 사실 마법사란다.”하며 별을 날린 것이다.
일단 아빠는 엄마에게 따귀부터 맞았다. 당신이 마법사건 마술사건 뭐건 상관은 없지만 애들 앞날이랑 관련된 얘길 현이가 열셋 되고야 한단 말이야? 이 미친 자야? 이게 사기 결혼이 아니고 뭐야? 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은이 열 받았을 때 모습이 흉흉하게 비치더라. 오 시발 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남자 기가 약하고 여자가 개쎈캐인 거야.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8월 둘째 주부터 학교에 일이 있던 엄마가 은이를 데리고 귀국해 버리신 것이다. 응. 나도 남겨 놓고. 아니 씨발 나도 이제 중학교 들어가야죠 엄마! 엄마!!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정말 그 호그와튼지 호구와튼지 하는 괴상한 데에 아들내미 넣어 버릴 생각인 건가!
“꺄우우욱 우꺄아아악 끄에에에 으께에에엑!”
“정신 차리고 잘 봐.”
시발 머리통이 붙잡혔닼! 아빠는 한 팔로 내 머리를 꽉 조여서 바동거리는 날 제압하시더니 웬 돌벼락을 그놈의 지팡이로 톡톡 두드렸다. 뭐 하는 짓거리여. 공공기물 파손인갓. 하고 일단 얌전히 그 꼴을 보고 있는데, 시발, 아니 시발? 벽돌이 들쑥날쑥 움직이더니 좌우로 떡하니 갈라지지 뭔가! 시바 그 사이로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는데 그냥 시장통 같은데?!
“쨔쟌.”
“이런 미친, 쨔쟌은 뭔 쨔쟌이야! 내가 아빠 아들인 거 그런 개드립으로 확인시키지 마!”
“어, 저기 담벼락을 소가 넘어간다.”
“엥 이 동네에도 소가 있냐.”
아빠 손끝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소 따위 코빼기도 안 보였다.
“기만의 담벼락을 네가 속아 넘어간다!”
“아씨 그런 아저씨 개그 하지 말라곸!”
“이걸 하이개그라고 하는 거야. 수준 높은 개그지.”
“꺼져.”
쿨한 도시남자처럼 아빠를 훑어봐 주고 먼저 성큼성큼 그 이상한 길거리에 들어가 버렸다. 거리도 무슨 중세 배경 영화처럼 생겼고, 사람들 옷도 약간 그런 느낌에 새까만 망토만 추가한 느낌이었는데 가끔 고깔모자 쓴 양반들도 지나다니더라. 무슨 진짜 어린애들 동화책에 퐁당 들어온 느낌이었다.
뒤에서 징징대는 아빠를 상남자처럼 무시한 채 호그와튼지 뭐시깽이인지에서 온 안내서를 펼쳐 들었다. 음. 일단 냄비랑, 어, 망토랑. 책들 사고.
“은행부터 가야 해.”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엥 그런데 은행이라니.
“아빠, 우리 돈 안 가져 왔어?”
“아니, 가져는 왔는데 마법사 돈으로 환전을 해야 하거든.”
마법사 돈은 또 뭐야. 난 미심쩍고 못 미더운 눈초리로 아빠를 보며 일단 아빠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정말 은행이 나왔다! 게다가 안에 돌아다니는 건 조그만 난쟁이 같은 거! 개징그럽게 생겼네 미친 시바. 나도 모르게 쳐 버릴 것 같아서 아빠 다리에 붙어서 징징거렸다.
“마법사는 돈도 다른 거 써?”
“황금 쓴다 황금.”
아니 리얼인가.
“뭐야 개쩜. 녹여서 팔자. 개이득.”
“너 같은 놈들이 아즈카반에 가는 거야. 내 아들이지만 열세 살부터 범죄에 눈을 뜨다니 대단하군.”
“아즈카반? 아빠가 말한 마법사 감옥? 거기 막 이상한 괴물 있다며? 이런 것도 다 거기 가는 거야? 감옥이 거기밖에 없어? 사람들이 그렇게 죄를 안 지어? 말이 됨? 아니면 감옥이 존, 아니 아니 무지 넓어서 거기에 사람이 다 들어가는 거야? 그런데 그럼 마법세계에서는 죄의 질을 따지지 않는 건강! 살인범도 거기 갇힌다며 절도죄랑 살인죄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고얔?!”
“하나하나 물어라.”
아빠가 도깨비라고 설명해 준 난쟁이가 아빠 지팡이랑 열쇠를 유심히 살피더니 다시 돌려줬다. 아빠는 열쇠랑 지팡이를 다시 받아 들고는 어떤 도깨비를 따라 내 등을 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너한테 얘기해 주기 뭣해서 안 하고 있었는데.”
“오 뭐야 말해 봐. 나 지금 무지 흥미진진해져쪙.”
“심각하게 걱정되는군.”
아빠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끄에에엑 우리 설마 저 졸라 초라해 보이는 수레 타는 건갘. 아빠가 먼저 앉고 다리 사이에 날 앉힌 채 끌어 안길래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진지하게 지껄여 봤다. 아빠 나 지금 진지해.
“아버지, 난 죽기엔 아직 너무 어려.”
“안 죽어 이 자식아.”
“나 농담할 기분 아니야 아빸! 시밬! 여기서 내려줘! 내려달라곸!”
“아 글쎄 안 죽는다니까.”
라고 하는 순간 수레가 출발해 버려땈!
“시바아아아앜!”
“야, 너 그런 욕은 어디서 배웠어.”
“몰라 시바아아아앜!!!! 아, 아으, 아빠, 아빠 나 토…….”
“뭐.”
“토할 것 같…….”
“야! 잠깐! 여기선 안 돼! 야!!!”
아빠 양복의 죽음을 엄마에겐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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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2. 24. 01:32
[라스타반, 알타이르의 죽음]
5학년이 끝난 방학에는 스티미스트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 결국 중간에 심장병이 도져 안드라스와 둘만 남겨져 반절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지만,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인생에 있어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지 6학년을 마치고 방학이 되어 저택에 돌아왔을 때, 그는 낯선 아이와 마주해야 했다. 허리에도 오지 않는 작고 따뜻한 것. 돌이켜 보자면 마지막으로 저택에 있던 이 년 전의 여름, 기안사르 부인의 배가 조금 불룩했었던 것도 같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건조하게 생각했다. 그런가. 그들은 결국 예정했던 두 아이와, 바라지 않았던 죄의 씨를 뿌리고도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모양이었다.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애교 있게 휘어지는 잿빛 자안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가 웃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린 막내 알타이르는 셋째 형을 유독 좋아했다. 하기야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두 형들보다야 다정스레 웃고 안아주는 형이 어린 아이에겐 더 매력적이었겠지.
굳이 어린 아이에게서만이 아니더라도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사랑 받을 자신이 있었다. 누구에게든지, 바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는 사랑을 원했던 자들에게서 사랑 받아본 적이 없어, 바라지 않던 자에게서라도 사랑 받는 것이 기뻤다. 알타이르 기안사르의 사랑을 제외하고.
알타이르 기안사르는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이였다. 라스타반 기안사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마음이 아프기는 했던 모양이다. 라스타반 기안사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쏟아냈던 저주의 말들을 들으며.
당신들은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그 고통이 과연 얼마나 컸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고통보다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에게 그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그저, 그렇구나. 하고.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생각했다. 그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지켜보듯 턱을 괴고 그 따스한 가정을 바라보았다. 얼굴만 마주쳐도 집안의 우환이라 인상을 찌푸리는 큰 형님도, 입만 열면 사납고 날카로운 비수를 쏟아내는 둘째 형님도 그 작은 꼬마 앞에서는 쩔쩔매며 표정이 풀렸다. 무뚝뚝한 얼굴로 애써 웃었다. 그 꼴이 우습기도 했고, 새롭기도 했고.
조금 끔찍하기도 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인간의 감정을 치밀하게 이해했다.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은 언제나 그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었다. 알지 못했던 것을 그의 지성으로 찾아낸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존재를 긍정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사랑도, 희생도, 기쁨도, 감사함도, 연민도, 슬픔도 알았다. 단지 그가 아는 감정의 대상이 기안사르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아아, 그래. 끔찍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그의 심장에서 출발해 전신을 돌고 있을 핏물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피가 흐를 저 여자, 저 사람, 저 청년들. 저 꼬마마저도. 전부 끔찍했다. 무엇이 얼마나 끔찍한지. 논리적이지 못한 감정은 그들을 볼 때마다 혈액처럼 역류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있도록, 크게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단련시켜 왔다. 그래서 그다지 격정에 사로잡힐 일은 없었으나.
견딜 수 없이 괴로워 질 때가 있다.
자신이 얼마나 환영받지 못할 존재인지, 어째서 죽었어야 했는지 알게 된 후로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집안의 사람들과 얽히지 않고 살아왔다. 고작 십오 년이나마 그는 언제나 완벽한 삶을 살았다. 흠집 잡힐 일도, 누군가와 얼굴 붉힐 일도 없을 인생이었다.
알타이르 기안사르를 중심으로 네 명의 기안사르가 모여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관중처럼 그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틀었다. 그는 애초에 그 자리에 끼지도 않았고, 부름 받은 적도 없다. 거슬리는 것은 그들이 있는 정원의 티테이블이 라스타반 기안사르가 종종 사용하는 자리라는 것뿐이었다.
문득 어미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똑같은 색깔을 지닌 두 눈동자가 새삼스레 마주쳤다. 알타이르는 자신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최근에야 조금 인식했다. 아이는 활짝 웃었다. 높은 체온처럼 따뜻한 감촉으로.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새삼스럽게도 그것이 태양 같다 생각했다.
그는 눈 꼬리를 조금 휘고, 입술 끝을 길게 늘어트렸다. 언제나 아이들은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다정스럽고 우아한 얼굴을 좋아했다. 알타이르도 예외는 아니었고. 형아, 짧은 발음으로 튀어나온 말에 그 주변을 둘러싼 가족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의 얼굴이 사납게 굳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웃었다. 조금 고개를 숙여 보이고 돌아섰다. 알타이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름대로 즐거운 관람이었다.
그는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단지, 단지.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을 나도 소중히 여겨서,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 안. 친애하는 나의 형제. 그것이 내 유일하고도 간절한 꿈인 것 같아.
아마 언제까지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 년 전 결국 둘만 남은 병원에서 새삼스레 나누었던 말이 머릿속에 뱅뱅 맴돌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1층의 서재를 향하던 발걸음이 순간 무언가에 붙들렸다.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작은 손 뒤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꼬마가 배시시 웃었다. 형아. 어물어물 부르는 목소리가 문득 입안에 사탕을 굴리듯 이쪽 귀에서 저쪽 귀로 굴러다녔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조금 미진하게 웃었다.
“저런, 알타이르.”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조심스레 아이를 안아 들었다. 조금 묵직하지만 그래도 들어올릴 만 했다.
“부모님께 가야지.”
작은 머리통 너머로 창백하게 질린 여자를 바라보며,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다시 웃어 보여야 했다. 그는 웃는 것이 가장 자신 있으니까.
“걱정하시잖니.”
왜애? 입모양으로 나온 질문을 똑똑히 듣고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그 뺨에 다정스레 입 맞추며 대꾸했다. 너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연약하고, 착한 아이니까 그런 거란다. 사랑스러운 내 파란 제비꽃. 그러자 알타이르는 까르르 함성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라스타반은 그 자리에 아이를 다시 내려놓고 여자가 다가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래서 그는 그 순간 기뻤던가? 알타이르 기안사르가, 열 살 된 그 꼬마가, 결국 기안사르의 건드려선 안 될 마법에 손을 댔다가 엉엉 울며 그를 찾아왔던 그 날.
“알, 나의 사랑스러운 파란 소년 알타이르.”
냉정하고 침착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다리에 매달려 형, 형, 이름을 부르던 뺨을 쓸어 눈물을 닦아 주며 그 이마에 입 맞추던 그 날.
“너무 걱정하지 마렴.”
어린 아이의 손이 어깨를 파이도록 붙들어 결국 시퍼런 상처가 남았다. 그렇지만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알타이르 기안사르를 품에 안고, 그저 다정스레 속삭였던 것이다.
“이젠 아프지도, 두렵지도 않을 거야.”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알타이르 기안사르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 방법이야 몰랐지만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본인의 심장마저 어느 정도 제어 하에 두고 있던 당대 최고의 젊은 치료사는 그저 외면한 것이다. 아니, 아니, 어쩌면 정말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한 눈에 관찰했을 때 알아내지 못했다면, 영영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본인이 아는 것을 외면했다고 봤다.
그가 죽기를 바랐었나? 피를 토하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서 홀로 늘어져 있던 형을 찾아왔던 다섯 살 꼬마를? 그저 춥고 오한이 들어 무서웠다며 주섬주섬 내뱉던 목소리를? 결국 창백해진 얼굴로 조심스레 다가와 형이라 불러주던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무섭냐고 묻고는 상냥하게 웃으며 품에 안겨 달래주던 그 작은 두 손을?
갈기갈기 살해하고 싶었나?
그런 것은 아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그 아이를 많이 아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가엾은 알타이르. 그래서 나는 기뻤단다. 네가 더 이상 수많은 진실을 마주하고 알아낼 필요가 없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너를 죽이게 되어서.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그 작은 몸을 품에 안아 들고 문을 나섰다. 맞아. 눈물이 났다. 죽은 자의 몸 치고는 아직 따뜻해서.
때때로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품에 가득 들어차던 작은 손이 생각났다.
맞아.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알타이르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시샘하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작은 몸이 점점 차가워져서.
추운 날을 두려워하지 않을래요, 형.
“나가.”
아이의 죽음을 전해 듣자마자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멱살부터 잡아 올렸던 큰 형님의 얼굴은 이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마치 보고 싶지 않았던 망령이라도 나타난 것 같은 표정으로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젖은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꼴로도 웃고 있을 거라면, 차라리 알타이르의 앞에서 꺼져 버려.”
뺨을 쓸면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알타이르. 너는 이제 추운 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잖니. 그는 병실 바깥의 작은 의자에 주저앉아 생각했다. 리겔은 그에게 웃고 있을 생각이라면 사라지라 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있으면 좋지. 알타이르는 죽었다. 라스타반 기안사르가 죽였다. 바라던 일들이 바라던 대로 되었고, 그는 이 상황에 기쁨과 환희마저 느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소 짓는 것이 가장 쉬웠다. 우는 것보다. 화내는 것보다. 맞아. 그저 웃는 것은.
추운 날이면 내가 형을 찾아올 테고, 그럴 때면 나는 형을 이렇게 안아줄 테니까.
그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에 쟁쟁 울리는 목소리가 어물어물 서툰 발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라스타반 기안사르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까 이젠 아프지 않을 거야. 형아도.
하여 라스타반 기안사르는 영원히 두려워할 것이다. 추운 밤을. 차가운 손을. 죽은 자가 돌아오는 날을. 물안개 낀 저녁을. 작은 손을. 태양 같은 순간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꼭 안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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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2. 22. 22:07
[나츠메 우인장]
어린 시절, 아마 몇 살 때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아주 어린 시절이다. 머무르던 집의 아이는 조금 몸집이 크고 행동이 굼떠서 집안 어른들이 그 아이를 많이 걱정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 집의 아주머니는 사랑이 무척 많은 분이라 집에 얹혀살게 된 꼬마를 미워하거나 구박하진 않았지만, 그 분의 사랑이라는 게 결국 그 아이를 대상으로 태어난 감정이라 눈치껏 먼저 뒤로 빠지는 것이 마음 편할 정도였다.
아주머니는 학교에 가는 길이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가깝지도 않은 길을 오랜 시간 함께 걸었다. 직접 몸을 움직여 걸어가는 것이 아마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길에는 꽃나무가 많았다. 항상 한들한들 떨어지는 새하얀 꽃송이, 분홍색 꽃송이, 노란 꽃잎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등을 보고 걸었다.
그녀는 때때로 내 손을 잡기 위해 집을 나서며 손을 내밀었지만, 그 옆에서 엄마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 것 같이 일그러지는 아이의 얼굴이 조금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저 미움받기 싫었던 이유도 있다.
아닙니다, 감사해요. 저는 조금 더 꽃을 보고 싶어서. 길 잃지 않고 잘 따라갈게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아주 난처하게 웃다가도 딸의 손을 고쳐 잡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도 마른 체형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제 귀여운 이름만큼이나 엄마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어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아이들만의 세계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애가 교문 근처에 갈 수록 짜증을 낼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척 시선을 조금 내렸다. 반면 뒤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걷는 눈에 보이는 그들은 굉장히 아름답고 또 따뜻해 보여서.
나는 그 풍경마저 상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때때로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 요괴라고 불리는 마물. 평범한 사람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일들을 어린 나는 곧이곧대로 주변의 어른들에게 알렸고, 다들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했다. 그 집의 아주머니는 정말로, 정말로 다정하신 분이라 나를 혼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때때로 아주 불쌍한 아이를 바라보듯 나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외로워서 그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그 집의 아이는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 미안해. 너희 어머니를 뺏으려 한 것은 아니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이상하게도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가지는 않았고, 나는 애써 못 본 척 시선을 쭉 아래로 내리깔았다.
여자아이는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다. 아니, 아마 그 아이들은 친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나를 싫어해서 우리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체 하고 지냈다. 학교에서도 나는 충분히 이상한 아이였고, 그 애는 더 이상 이상해 보이지 않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애가 짓궂은 남자애들에게 밀쳐 넘어졌을 때 그 앞에 나섰던 건 분명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생각해보면 평소에도 자주 따돌림 당하고 놀림 받던 여자아이가 가끔, 아니 종종, 자주, 아주 자주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아이에게 지켜졌다고 해 봐야 또 하나의 놀림거리가 될 뿐이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 애를 제대로 보호해 줄 힘도 없었다. 힘없는 사람은 보호하기 위해 나설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 애가 보기에 나는 무척이나 책임감 없고 싫은 아이였을 것이다.
그 애는 너 같은 건 우리 가족도 아닌데 나서지 말라고 외치며 울었다. 우리 엄마를 뺏어간 게 누군데 오빠인 척 하지 말라고. 맞아. 나는 너희 가족도 아니고 아주머니의 아들도 아니고, 너의 오빠도 아니야. 그렇지만 난 너희 아주머니가 창피하지 않아. 못된 말을 입속에 웅얼거리다가 스스로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아무도 듣지 못한 말을 나는 들었던 것이다.
한참, 한참을 고민하다가 먼저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죄송한데 이곳이 너무 불편해요. 혹시 다른 곳에 갈 수 있게 알아봐주실 수 없을까요?
아주머니는 다른 말보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셨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긴 너무 따뜻해서. 고마워서. 그래서 그랬어요. 사랑으로 가득했던 아주머니께 죄송한 마음도 있었고, 버릇없는 말을 했다고. 아직까지도 생각하지만.
그 말을 던지고 뛰어 나와 학교 가는 길에 있던 꽃나무 아래에 섰을 때의 그 아득함이란.
뺨이 꽃으로 젖어들듯 멍청히 선 채 꽃을 맞으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어딘가에 머물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머물 곳을 조금 빼앗아야 한다고.
꽃이 한들한들 춤을 추며 떨어졌다. 뺨, 속눈썹, 향도 남지 않은 얇고 따뜻한 것들. 아주머니와 그 아이가 걷던 다정한 길 한 가운데에 주저앉아 나는 꽃비처럼 울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우는 기억은 진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 날의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신기했다. 꽃비에 뒤섞여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뺨에 털이 보송보송한 아기짐승 발바닥이 닿은 순간에야 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야옹선생……?”
“나참, 낮에 요괴라도 만난 거냐?”
아직 창밖은 어슴푸레했다. 그래서 푸른 어둠으로 조금씩 일렁이는 천장 구석에 못생긴 고양이 얼굴이 찔끔 빠져나왔다. 시선을 도로록 굴리자 야옹선생이 혀를 쯧쯧 찼다. 고양이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내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열없이 웃다가 뺨에 닿았던 발바닥으로 꾹 눌려야 했다.
“뜨끈뜨끈한 얼굴로 질질 울고나 있기는. 정말이지 허약한 녀석 같으니라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들어올렸다. 아직 해는 채 뜨지 않았지만 다시 잠들기에도 시간이 애매해서 가만히 야옹선생을 보다가 새삼 그의 복고양이 몸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랑거리는 털이 마치 그 날의 꽃비 같아서.
“……깨워줘서 고마워, 선생.”
머쓱하게 웃자 야옹 선생은 무릎 위에 등을 둥글게 말며 역시 인간은 쓸 데가 없다느니 빨리 죽어버리고 우인장을 내놓으라느니 모난 소리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에 조금 느슨하게 늘어트린 채 아르릉, 마치 진짜 고양이처럼 울었다. 옛날 꿈을 꿀 때 야옹 선생이 나를 만지면 가끔씩 내 꿈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의 그가 내 꿈을 함께 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래도 야옹선생은 마치 제 집 안방처럼 내 허벅지를 앞발로 팡팡 내리쳤다.
“세수하고 씻기나 해라, 못난 녀석.”
“네에, 네에.”
그 곳의 꽃비 쏟아지던 길은 언제나 상냥하고 따뜻한 등밖에 보이지를 않아서, 나는 항상 조금의 거리를 벌린 채 관중처럼 조심스레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의 등굣길은 꽃송이가 쏟아지는 아름다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걸을 사람이, 어쩌면 요괴가 있다.
가끔씩 그 상냥함이 꽃송이처럼 옷자락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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