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플/프리메르] 그는 혼자가 될 준비를 마쳤다.
- 기타 2차창작/메플
- 2015. 12. 10. 01:29
※컴퓨터에서 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메이플 2차, 프리드 중심의 프리메르 쪽글
※원작 모르는 자의 과거날조 주의
※화뉴님 힘내시라구웃
0.
“당신의 싸움에는 승산이 없어.”
푸른 눈의 인간 남자가 메르세데스에게 속삭였다. 붉은 망토를 휘장처럼 흩날리며 바람결에 그의 진한 갈색 머리칼도 뒤섞였다. 메르세데스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며 그 남자를 샅샅이 살폈다. 기분 나쁜 기운을 두른 것도, 어딘지 악한 면모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여왕은 푸른 녹색이 섞인 엘프 특유의 청량한 금발을 귀 뒤로 넘겨 정돈했다.
“검은 마법사의 수하인가?”
엘프의 여왕은 조용하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뇌까렸다. 그러자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당신을 만나러 온 보잘 것 없는 마법사야. 에우렐을 지키는 엘프의 여왕, 메르세데스. 당신의 싸움에는 승산이 없어. 지키기만 해서는 빼앗기는 순간을 늦출 뿐이지 원인을 제거할 수가 없거든.”
“먼저 공격하자고? 그건 승산 없는 싸움이야.”
“그래, 나의 승산 없는 싸움이지. 아직까지는 나만의 싸움이야.”
남자가 단조롭게 웃었다.
“당신의 승산 없는 싸움과, 내 승산 없는 싸움이 만나면 무언가 없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부족해. 그대는 그저 인간일 뿐이고, 부끄럽지만 나는 에우렐을 지키는 것이 고작…….”
“당신과, 나와, 그리고 또 누군가의 승산 없는 싸움을 모으는 거야.”
그 남자, 훗날 드래곤 마스터, 륀느의 대리자라 불리게 된 신화적인 마법사가 그 날 메르세데스에게 속삭였다.
“우리는 결코 끝나지도, 끊이지도 않는 대항을 시작하는 거야. 메르세데스.”
마지막 꽃잎이 지던 에우렐의 늦봄, 아프리엔의 계약자 프리드가 그곳에 있었다.
“나와 함께 가자. 새 시대를 열러.”
1.
“메르세데스.”
프리드가 속삭였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그는 답지 않게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두어 방울 떨어트렸다. 그러나 가까스로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메르세데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의 그 사소한 몸짓, 목소리, 행동들이 언제나 그랬듯. 언제나 메르세데스가 모르던 것들을 가르쳤듯.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이제 곧 그들이 올 거야. 이제 곧…….”
메르세데스는 힘겹게 눈을 깜박였다. 프리드의 새파란 눈동자가 다정스레 휘어졌다. 그는 어딘지 괴로운 얼굴을 하며 속삭였다.
“이제 곧 전쟁이 끝나.”
2.
"악몽이라도 꿨어?"
숨을 몰아쉬던 메르세데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비스듬히 나무 둥치에 기대 앉아 수첩을 만지작거리던 프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메르세데스는 잠시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푸른 눈동자에서 숨을 멈췄다.
"프리드."
메르세데스는 이유도 없이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그러나 그 갑작스런 부름에 프리드는 언제나와 같은 여상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응, 왜?"
메르세데스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젓고 몸을 제대로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프리드가 있는 모닥불 근처의 작은 바윗돌 위에 앉았다. 메르세데스는 잠시 주저하는 눈치였다. 프리드는 인내심 있게 눈을 깜박이며 메르세데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말을 두어 번 집어삼키던 메르세데스는 결국 어린아이처럼 묻고야 말았다.
"인간은 빨리 죽지. 그대도 그럴까?"
"보통 사람보다는 오래 살 테지만, 맞아. 너보다는 일찍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갈 거야."
고개를 기울이며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프리드가 단조롭게 대꾸했다. 메르세데스의 망설임 뒤에 떨어진 답이라 그런지 그의 말에는 여느 때보다도 더 단호하고 분명한 무언가가 있었다.
"갑자기 왜?"
메르세데스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입속에서 잃어버렸다. 그녀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다가 고결한 자 특유의 냉정한 말투로 속삭였다.
"인간이란 신기한 존재야. 나는 무언가가 없는 세상을 두려워한 적이 없어."
"지금은 두려워?" 프리드가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마냥 물었다. 메르세데스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너희가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 말이야. 마법으로도 없는 건가?"
그 말이 어쩌면 그에게는 적잖이 사랑스런 재롱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리드는 순간 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정한 눈을 한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안 돼, 여왕님. 투정을 부릴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메르세데스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는 서서히 익숙해져야 해. 전쟁을 통해 무언가 잃는 슬픔에, 전쟁이 끝나면 무언가를 서서히 떠나보낼 두려움에.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아마 넌 많이 외로워 질 거야.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영원히 네 곁에 있어 줄 수는 없으니까."
메르세데스가 대꾸 없이 귀 끝을 쫑긋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프리드는 손을 뻗어 메르세데스의 한 손을 쥐어 앞으로 끌고 갔다. 펼쳐진 손바닥에 그는 손가락으로 이름을 적었다. 팬텀, 루미너스, 아란, 메르세데스, 아프리엔, 그리고……. 그리고 누군가가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프리드가 속삭였다. "우리는 모두 혼자되는 연습을 해야 해."
"왜 모두가?"
"앞날이라는 건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프리드가 다시 어딘지 초탈한 사람처럼 말했다. 그는 다분히 장난스러운 태도로 고개를 기울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같이 준비해야 네가 덜 외로울 것 같아서."
메르세데스는 잠시 새하얀 뺨을 기울이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을 놓아주는 프리드의 손을 돌려 잡았다. 그리고 이번엔 그의 손가락을 붙들고 제 손바닥에 이름을 마저 적었다. 프리드.
프리드.
“인간이란 정말 지독한 종족이야.” 메르세데스가 단조롭게 말했다.
“한 번 붙들리면 달아날 수가 없어서 견딜 수가 없어.”
프리드는 어딘지 죄스럽게 웃어 버렸다.
3.
"좋아해, 프리드."
메르세데스가 또 뜬금없이 지껄였다. 루미너스는 슬쩍 고개를 들어서 메르세데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귀마개를 꼈고, 팬텀은 이제 어이없다고 하기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사과를 베어물었고, 아란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프리드를 바라봤다. 때마침 둘 사이에 앉아 있던 누군가는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얼굴로 난감하게 스튜 그릇을 바라보다가 슬쩍 숟가락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식기를 정리하던 프리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르세데스를 바라보다가 다정스레 웃었다.
"응, 나도 좋아해. 메르."
아냐, 그거 아니야. 팬텀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다시 눌러 삼켰다.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프리드가 해맑게 반복했다.
"정말 좋아해."
아니, 그거 아니래도. 누군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야 말았다.
4.
메르세데스는 매양 좋아, 좋아해. 프리드 그대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있어, 그대에게 주고 싶었던 것들이 있어, 그대가. 좋아. 좋아해.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프리드는 매번 나도 좋아해!라며 어린애도 하지 않을 눈치 없는 대응을 선보이곤 했는데, 팬텀은 그럴 때마다 왜 번민은 자신의 몫인지 고민했고 누군가는 그럴 때마다 왜 고통은 자신의 몫인지 얼굴에 손을 묻었다.
정작 메르세데스는 프리드의 그런 미온적이고도 어리숙한 대응에 이렇다하는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검은 마법사의 군단장을 쫓아 다시 에우렐 근처를 지나갈 때, 돌연 메르세데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프리드, 좋아해." 그리고 프리드는 여느 때와 같이 대꾸했다. "응, 나도. 메르."
그리고 그 때에 메르세데스는 응당 보이리라 여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로 데구르르 프리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표정 없는 얼굴에 미미하게 미소를 머금었을 뿐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메르세데스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분홍색 감도는 봄꽃이 햇살 머금은 풀잎처럼 반짝이는 머리칼 위로 흩날렸다.
"그 때에는 함께 살자. 이곳 에우렐에서."
프리드는 잠시 그 말을 이해하는 것에 시간을 소요했다. 이윽고 그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을 지었다가 가볍게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메르세데스를 향해 돌아섰다. 그제야 프리드가 난감하게 웃었다.
"메르세데스, 나는 인간이야. 너와는 다른 시간축에 사는 생명이지." 그는 웃음기 어린 어조로, 다정스레, 그러나 사전을 읽듯 말했다.
"알아, 프리드. 나는 언젠가 혼자가 될 준비를 끝냈어."
그 말은 기어코 프리드의 예측마저 벗어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입을 다물었고, 드물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했다. 팬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즉시 지금껏 프리드가 해 왔던 나도 좋아해, 정말 좋아해 따위의 말들이 완곡한 거절이었음을 눈치 챘다. 안절부절 못 하던 팬텀이 말을 고르는 사이 프리드가 기어코 먼저 대답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그건 영원한 반려가 되고 싶은 것과는 달라, 메르. 우리는 좋은 동료고 친구로서 영원히 함께 동행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모두로서의 일이지 결코 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만일 내가 오해하게 했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메르세데스가 속삭였다. "나는 그대를 좋아해. 엘프의 인생은 길어. 그거면 충분해. 어차피 그대가 어딘가를 떠돌 셈이라면, 그건 내 곁이었으면 좋겠어."
“그러기로 약속해 줘.”
프리드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을 삼켰다. 그는 메르세데스가 마치 어미오리를 따르는 아기오리처럼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을 명백히 언급하기엔 상처받을 것을 염려했다. 누가 되었든, 상처가 남을 말을 하느니 그는 말을 삼키는 것을 택했다.
"이봐……. 그, 일단 우리 식사를 하자고?" 팬텀이 재빨리 활기차게 외쳤지만 메르세데스는 여전히 커다란 두 눈을 보석처럼 깜박이며 프리드를 응시하고 있었고, 프리드도 외면 없이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메르세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팬텀이 사색이 된 채 입술을 달싹였다.
그때 루미너스가 책을 덮으며 시니컬하게 지껄였다. "작작들 좀 하지 그래."
팬텀이 즉시 상 아래로 그의 발을 짓밟았지만 루미너스는 아픈 내색도 없이 냉소적이고 건조한 어조로 지껄였다.
"전쟁이 목전이야. 그런 얘기는 나중이라도 좋아."
"……. 맞아."
프리드가 망설이다가 속삭였다.
"그런 얘기는 나중이라도 좋아."
5.
“약속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프리드가 조용히, 오래 된 유화처럼 평화롭고도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메르세데스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봤다. “역시 너와 약속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메르세데스.”
“그렇지만 미안해. 메르. 정말 미안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해놓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것이 프리드가 메르세데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6.
검은 마법사를 시간 뒤편에 봉인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바치고 희생해야 해.
그렇다면 내가 하지. 어차피 나에겐 더 잃을 것도 없어.
안 돼, 루미너스. 너는 이 봉인마법을 가동시켜 줘야 해. 내가 다친 지금 그걸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사실 난 처음부터 내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너희를 이곳까지 끌고 왔어. 이 모든 여행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나야말로 그 역할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가 하게 해줘.
……. 프리드. 너…….
그러니까 내가 할게, 부탁해, 루미…….
————그리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프리드, 네가 없으면 봉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잖아. 나는 돌아갈 곳도, 내가 사라져서 슬퍼할 사람도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중 한 명이라도 잘못 되면 내가……. 우리가 슬플 텐데……. 아니, 아니, 그랬던가?————
7.
그리고 마치 찰나와 같은 순간, 영원과도 같은 상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손에서 놓아 버린 것만 같은 아득한 그리움의 빈 칸에 째깍, 시계가 돌았다. 시간이. 팽그르르. 팽그르르. 팽그르르.
8.
그 강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시간 속에, 남겨진 영웅은 혼자가 되었다.
9.
어느 소년의 연한 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뒤섞여 푸른 하늘에 나풀나풀 흔들렸다. 선하고 강인한 눈동자, 앳되고 푸른 얼굴. 너의 곁에는 청량한 바람이 부는구나. 내 친구들이 그랬고, 언젠가의 내가 그랬듯. 너도 분명 무언가 귀중한 것을 위해 싸우게 되겠구나. 고난에도 역경에도, 시험에도 굴하지 말고 나아갈 것을 내가 너를 위해 기원하마. 언젠가의 소년, 그리고 또 언젠가의 영웅에게. 아주 머나먼 미래를 훑어보듯 프리드가 속삭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말들이었다. 그는 홀로 눈 오는 설산 위에 섰다. 그 거대한 싸움을 위해 준비하던 과정에서 그는 아마 어떤 직감적인 현명함이라도 손에 넣었는지 그 후 무언가가 사라졌음을 알았지만 사라진 것을 찾기에는 그 대가로 얻은 것이 너무도 컸다.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는 그것에 서러움을 느꼈다. 그가 구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만 남겨놓고 떠나간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제는 륀느도. 륀느도 떠나보낼 시간이었다. 수도 없이 지나가는 계절, 멈추지 않고 륀느는 너희에게로 달려가겠지.
프리드가 없는 시대에야말로 되찾을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렸다. 사막의 꿈은 너무도 짧았다. 내가 너희를 위해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남겨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10.
“좋아해.”
아프리엔의 계약자가 담담하고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속삭였다. 마치 버릇이라도 되어 버린 말처럼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혀끝을 저미며 빠르게 굴러 떨어졌다. 그는 이제 그 누구도 발을 딛을 수 없는 봉인의 땅 앞에서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정말 좋아해, 메르.”
처음부터 무언가를 희생한다면 그것은 본인이었다. 언젠가 제 손으로 없앨 미래를 누군가에게 약속하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한 마디 서로를 붙잡아보기라도 하는 게 옳았을까? 프리드는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많이 좋아해서. 그래서 정말 다행이야.”
그는 휙 로드를 휘둘러 땅에 짚었다. 너풀거리는 붉은 망토가 그의 어깨 위를 어느 나무의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혼자가 아닐 시대에조차 네가 홀로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
그러나 그는 결국 사람이라, 그런 생각을 조금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존재를 바친다’는 것은 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이렇게 천천히 앗아가 버리겠다는 운명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그 무언가,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아아, 나는 결국 초월자가 되지 못한 어느 무력한 인간이라, 결국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아.
11.
우리는 모두 혼자되는 연습을 해야 해, 메르세데스.
앞일이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러나 조금은 외롭겠지. 어쩌면 아주 많이.
어쩌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12.
“무엇을 보셨습니까, 프리드님?”
그는 머리칼에 뒤섞인 모래 알갱이를 털어내며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 새파란 눈동자를 두어 번 깜박이던 그가 진지한 낯빛을 한 채 질문을 던진 여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안심시키기라도 할 듯 웃어 보였다.
“미래에, 어느 순간에.”
그때에 다시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수많은 비극이, 수많은 피가, 수많은 죽음이 그 어둠을 반길 것이고, 그 앞에 무언가를 지키려 하는 자들의 힘은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이미 그들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승산 없는 싸움이 또 다른 누군가의 승산 없는 싸움과 만나.
그곳에 프리드는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어떤 소년에게 많은 것을 맡기기로 했다. 그 선량하고 올곧은 눈동자, 다정하고도 유약한 표정. 아마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강대한 힘, 그리고 그보다도 더한 선한 마음.
아프리엔의 계약자 프리드는 황야에 섰다.
“미래를 그들에게 맡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해.”
모래바람에 갈색 머리칼이 뒤섞이고, 붉은 옷자락이 신기루처럼 흔들렸다. 륀느의 대리인이 이윽고 황야에 섰다. 홀로, 함께 하는 이도 없이 오직 홀로.
홀로 짊어지기에는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미래는 너희에게 맡길게, 친구들. 그러니 나는 이곳에서.”
13.
그 외로움을 양분 삼아 애정의 텃밭에 씨앗을 심는다.
14.
모래바람이 불어 닥치는 사막의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게 반짝여서, 마치 에우렐의 숲, 혹은 언젠가 다함께 밟았던 바다와 같이 청량하리만치 아팠다. 프리드는 홀로 그 메마른 숨을 들이켜고, 수도 없는 밤, 수도 없는 낮을 지새우며 되뇌던 말을, 최후에 한 번 더 뇌까렸다.
“너희가 없는 세상.”
그가 없는 시대.
“너는 끝내 혼자되는 준비를 해야 해.”
엘프의 여왕과 어떤 인간 마법사 사이에는 끝내 메울 수 없는 어느 간극이 있다. 그녀가 바라던 어떤 동반자도 그 시대에는 없을 테지만 기어코 그곳에서 무언가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있기를, 그는 바라고 또 바라면서.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너는 끝내 혼자되는 준비를 해야 해.”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15.
에우렐의 늦봄. 아마 꽃이 막 피고 질 무렵.
그리고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최후에.
최후에 이르러서야.
[메이플/프리메르]
그는 혼자가 될 준비를 마쳤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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