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페투니아 에반스 (02)
- 기타 2차창작/[해리포터] 너에겐 평범이 부족해
- 2015. 11. 9. 01:27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서야 나는 그것이 몹시도 몰지각하고 보기 싫은 행동이며,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길은 아니었다. 역시나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나는, 아주 유감스럽게도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마 내 예상보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와 마주치자 그도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내 짓궂은 망나니 같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의 웃음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쓰거나 지적하지 않을 정도로 꽤 멋들어진 미소였다. 코크워스에서 보기 드문 미남인 것은 분명했다.
서늘하고 하얀 뺨이나 휙 치켜 올라간 눈매는 신경질적으로까지 보였지만 다소 오만해 보일 정도로 나른한 표정에 묻혀 장난꾸러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스물 또래의 젊은 남자애들이 흔히 그러하듯 무슨 락 밴드 보컬처럼 멋 내어 머리를 기른 청년이었다. 아직 소년 같기도 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딱 청년의 그것이었다. 몸에 딱 맞는 비싼 정장을 입고 있는 몹시 잘 생긴 남자가 혼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스무 살 계집애를 멍청히 지켜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민망할 지경이었다. 더구나 그는 다분히 흥미로워 보이는 표정이기까지 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마치 제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단정하면서도 개구지고, 평범한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는 것을 무엇보다도 힘들어 하는.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손등을 들어 뺨에 가져다대며 손에 들고 있던 앨범을 품에 끌어안았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민망했다. 그러게 왜 내 마음속은 제멋대로 울렁거리다가. 나는 다시 릴리의 녹색 눈을 떠올렸다. 가슴 속이 답답했다. 마치 죽은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 토하고 싶을 정도로 울렁거렸다.
일단 나는 다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성큼성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일단 그것밖에 없었다.
그때 남자가 내 팔을 잡아챘다. 배려라곤 찾을 수 없는 손길이었던 탓에 나는 순간 크게 비틀거렸다. 남자는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타인에게 미안함을 느낀 적인 드문 제멋대로인 사람 특유의 무신경한 반응이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 아니고 오히려 큰 편이었지만 남자는 내가 고개를 치켜들고 봐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가 붙잡은 내 팔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해명이 필요했다. 불쾌하고 무례한 행동에 대한 해명이든, 지금 날 잡아 세운 것에 대한 해명이든 말이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자 남자가 무신경한 태도로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떠올리다가 미간을 좁혔다.
“코크?”
“콜라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해 주었다. 아무리 봐도 이 동네 사람은 아닌데, 코크워스는 외부인에게 친절한 마을이었다. 나는 조금씩 옛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최선을 다 했다. 그 빌어먹을 해리 포터로 인해 중요한 사업이 망가진 그 날에조차도 나는 크게 흥분하지 않고 참아낼 수 있었다. 남자의 태도는 다소 답답하고 무례했지만 나는 그것을 그저 두기로 했다.
“아니, 그러니까…….”
남자가 얼간이처럼 말을 더듬다가 멋들어지게 자란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한 채 그가 시선을 기울였고, 나는 그가 대체 언제쯤 지나치게 세게 쥔 내 팔뚝을 놓아줄지에 대해 생각했다.
“코크웍?”
“혹시 코크워스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 마을 이름이에요.”
“아하.”
슬슬 이 남자가 정신병자가 아닌가에 대해 떠올릴 쯤에야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코크워스 병원이 어딥니까?”
나는 그제야 이 외부인이 코크워스에 온 이유가 병원에 가기 위해서임을 눈치 챘다. 코크워스 병원이 그렇게 뛰어난 병원은 아닐 텐데, 지인이라도 이 마을에 살아서 병문안이라도 가나 보지. 나는 심드렁히 생각하며 내 팔을 바라봤다. 그제야 남자가 손을 펴서 날 놓아주었다.
“코크워스 병원이라면.”
나도 지금 그쪽으로 가려 한다고 대꾸하다 말고 나는 말을 삼켰다. 릴리를 보러. 나는 가야할까? 내 결혼식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러고 보면 릴리의 남편을 처음 만난 것도 이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오, 세상에.
“오늘이 몇일이죠?”
“예?”
남자가 얼빠진 투로 반문했다.
“오늘이 몇 월 몇 일이죠?” 내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반복하자 남자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그게 어울릴 거라고 믿는 듯 해 보였는데, 놀랍게도 정말 어울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6월 25일…….”
“세상에, 맙소사! 당신 코크워스 병원에 갈 거라면 이걸 거기 있는 빨간 머리 여자애한테 전해줄 수 있나요? 이 마을에 그 애처럼 빨간 머리는 드무니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하지만 부탁해요.”
“예?”
나는 남자의 대답도 제대로 듣지 않고 그에게 졸업앨범을 떠넘겼다. 세상에,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남자가 졸업앨범을 받아들더니 표정이 이상해졌지만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엉망이 되는 꼴을 증오하다시피 싫어했지만, 지금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굽이 낮은 신발을 신어 다행이었다. 세상에, 정말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이 이 근래의 일이었다. 릴리의 졸업식을 전후로 우리는 약혼을 했고, 아마 릴리가 친구들에게 머글 — 그 빌어먹을 호칭을 쓰며 — 세계를 안내해 줄 거라고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신이 나서 떠드는 것에 염증이 난 나는 그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을 만나러 갔었다. 맞아, 그리고 나는 그에게 릴리에 대해 고백했고, 그는 내게 평범하지 못한 여동생이 있다 할지언정 그게 나와는 무관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게 오늘 있어야 할 일이다.
솔직히 그를 아주 열렬하게 사랑한 적도 없고, 때때로 보이는 그의 인간성에 크게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그는 이렇다 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내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삶이 반복된다 해도 나는 내 상대로는 남편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설령 이게 꿈일지언정, 아니 꿈 따위에 불과하니 나는 더더욱 더 불쾌한 것이 아닌 그를 만나는 것을 택해야 했다. 그는 내 인생에 유일하고도 완전하게 평범한 대상이었다. 내 아들이 그러했듯, 내가 지니지 못했던 것들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래, 때로는 남편이 밉고 원망스럽고, 예를 들어 아들에게 윽박을 지르다가 그를 무시하던 전날 밤과 같은 — 아니, 전날 밤이라 해도 옳을까? — 그런 때면 그가 견딜 수 없이 미웠다. 그렇지만 평범한 부부라는 건 대개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평범했다. 페투니아 에반스라는 한 개인이 충분히 행복할 정도로.
집에 도착해 이번엔 실패 없이 단번에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절박해진 것 같았다. 머릿속에 릴리의 얼굴이 흐릿하게 아른거리다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애의 이름은 해리라고. 남편을 꼭 닮았지만 눈동자는 자신을 닮은 녹색이라고 말하는 편지를 받았다. 8월의 어느 아침이었던 것 같다. 그때껏 나는 그 애를 증오하고 있었다. 릴리의 친구랍시고 내게 갖은 모욕을 주고 나를 인간 취급도 해주지 않던 건방지고 끔찍한 세베루스 스네이프부터, 나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마법사들만의 이야기를 떠들던 제임스 포터, 종래에는 그들 모두를 만나게 한 내 끔찍한 여동생 릴리 에반스까지. 나는 그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 편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해리가.
나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던 손을 멈췄다. 대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일까? 그게 꿈이었을까?
그게 현실이고 이게 꿈이라는 말보다는 이게 현실이고 그게 꿈이라는 편이 좀 더 평범했다. 전형적이었다. 어느 쪽이든 마법사 여동생이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일 수 없겠지만, 비교하자면 그랬다. 나는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긴 후에 다이어리를 펼쳐 들었다. 다이어리에는 버논 더즐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행히 데리러 오기로 한 모양으로, 장소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아니, 이미 시간이 지났나? 어떻게 된 거지? 언제 만났더라? 뭘 했더라? 아냐, 그건 꿈에 불과했다. 나는 그걸 꿈이라 여기기로 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쪽이 현실임에 분명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끔찍한 마음으로 릴리를 볼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어찌 되었든 집 앞에 나가서 버논이 오길 기다리거나, 적어도 집 앞이 보이는 장소에서 적당히 타이밍을 찾기 위해 거실로 내려가던 나는 검은 머리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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