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투니아 에반스 (01)



[해리] 너에겐 평범이 부족해

#1. 페투니아 에반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졸업한 바로 다음날인데 뭐가 그리 벌써 그리운지 마법사 — 빌어먹을 —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졸업장을 찾아 집안을 뛰어다니던 릴리는 결국 계단에서 크게 굴러야 했다. 덕분에 그 애는 만나기로 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수도 없었고, 나는 삼 년 빨리 태어났다는 죄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어머니에게 끌려 나가야 했다. 아까 뭔 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일이 그렇게 되었다더라.

 “큰 딸, 오늘 무슨 약속 없지?”

 “중학교 때 친구들 만나기로 했었는데.”

 물론 그런 약속을 잡았는지 아닌지 나야 알 바가 아니었다. 이십년 전 일을 내가 어떻게 기억하겠냐고. 따라서 그 대꾸는 일종의 반항이었고.

 “그렇지만 릴리가 다쳤잖니. 엄마 아빠는 릴리가 입원한 병원에 좀 다녀올 테니까 화이트랑 블랙 밥 좀 챙겨 주고.”

 어떻게 꿈에서도 내 인생은 릴리 뒷바라지나 하면서 시작되는 걸까. 새하얀 말티즈 — 화이트 — 앞에 밥그릇을 놓아주며 나는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괴었다. 릴리가 어제 졸업장을 받았다느니 한 걸 보면 지금이 이십년 전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뭘 바라고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해리, 그 꼬마의 죽음을 예감하고.

 나는 이제야 릴리가 그리워졌을까?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내 여동생은 마법사라는 빌어먹을 족속들의 이해 못 할 세계에서 불합리하게 살해당했다. 듣기로는 어린애들 소설에나 나올 위험천만한 악당 ‘볼드모트’가 내 동생과 그 불쾌했던 제부 제임스 포터를 자기 인생의 몹시 큰 위협으로 느껴 직접 살해했다고 덤블도어라는 괴팍한 노인이 알려주었다. 말은 성인군자처럼 해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압박하고 겁을 주는 것이 여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찌르려 한 아이에게 그 자가 패배하고, 그 아이만이 살아남았다.

 그게 해리 포터였다. 내 여동생의 아들. 빌어먹을 제부의 아들. 내 여동생에게 악당을 불러들인 꼬마. 빌어먹을 제부가 죽은 자리에 혼자 살아남았던 꼬마. 나를 이모라고 부르던 꼬마. 릴리의 녹색 눈동자를, 나는 갖지 못했던 것을, 마법 능력을 고스란히 가진.

 해리, 포터였다.

 깽! 화이트가 비명처럼 짖어댔다. 덕분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블랙, 저리 꺼져!”

 새까만 셔틀랜드 쉽독 —블랙— 이 말티즈의 목덜미를 물어 팽 내던지고 밥을 뺏어먹고 있었다. 나는 발로 블랙의 몸뚱이를 밀며 밥그릇을 뺏어 들었다. 결국 블랙이나 화이트의 몸이 닿지 않는 식탁 위에서 밥그릇을 나눠 담아준 후에 따로따로 놓아줬다. 집에서 개를 키운 게 이십년 전 일이다 보니 밥은 동시에 줘야 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래, 빌어먹을. 갑자기 왜 돌아왔을까? 이게 대체 어쩐 일일까? 시간을 거슬러오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이상한’ 일이 아닌가? 아니, 이건 꿈일 것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그토록 바라던 때에는 날 배반해놓고 이제 와서 찾아 올 리 없어.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나는 일어나서 릴리의 얼굴을 보지 않았는데, 그 애의 멀쩡하게 살아 있는, 심지어 앳되기까지 한 얼굴을 보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왜 꿈을 꿔도 이런 꿈밖에 꿀 수 없는 거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찌르릉 찌르릉 소리가 날카롭게 고막을 후벼 팠다. 나는 잠시 이 상념을 지속하고 싶었지만 몸은 저절로 움직여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더즐리.”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던 나는 재빨리 말을 바꿔야 했다. “아니, 에반스입니다.”

 “페투니아?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만 거니?”

 “아뇨, 엄마. 별 건 아니에요.”

 “너 오늘따라 굉장히 말투가……어른스러워졌구나?”

 나는 조금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럼요.”

 몇 마디 주고받은 후에 나는 쾅 소리를 내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릴리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으니 릴리 졸업앨범을 가져오는 길에 그 애들 먹일 케익도 좀 사오라는 분부였다. 그놈의 릴리, 릴리. 이십년 만에 들어도 아주 감정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으며 릴리의 방을 열어 젖혔다. 두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 흐트러진 릴리의 방을 기계적으로 정돈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빠르게 앨범을 챙겨들고 달려 나왔다. 이제야 두들리 얼굴을 떠올린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게 꿈이라면 — 아니 이것은 꿈이다 — 꿈이니까 — 그 애는 아직 자고 있을까?

 왜 갑자기 해리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건지. 두들리는 왜 해리만 도망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녀석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해지는 거였다. 그 애를 데리고 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해리는. 해리 포터는.

 죽었을까? 릴리처럼? 릴리를 죽인 그 자에게?

 문을 잠그려는데 열쇠가 자꾸 헛돌았다. 이제 보니 차고 열쇠로 집 문을 잠그려 하고 있던 모양이다. 열쇠 모양도 생각이 안 나는데 과거로 돌아오긴 무슨. 이건 분명 질 나쁜 꿈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내 옆에는 남편과 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부족함 없이 아껴주겠다고 마음 먹었던……두들리의 얼굴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릴리로 인해 내 평범함에 고통 받았다. 종래에는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죄악시하기 시작했다. 그 재미없고 끔찍한 남자, 남편과 결혼했던 것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이었다. 그래도 그 애는 소외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 아들은 적어도 사랑하며 키우고 싶었는데. 갑자기 과거의 일처럼 그들이 아득하게 여겨졌다. 1970년대의 거리는 밝았다. 아직 이십년 후처럼 차가 많이 다니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조금 더 조용했고. 햇살은 조금 더 눈이 부셨다. 나는 이곳에서 현실감을 잃어버렸다.

 아니, 현실감이 없는 건 그쪽이었다. 내 여동생이 세기의 영웅을 낳고, 그 이유로 악독한 살인마에게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소년은 세계의 희망이 되었다. 내가 얼굴을 볼 때마다 꼴도 보기 싫은 증오와 번민에 사로잡혀 벽장 아래 가둬 두었던 꼬마였다. 녹색 눈을 지닌. 그거야말로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릴리, 너무 미웠던 릴리, 난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가졌던 릴리. 그러나 남들 앞에 나보다 먼저 세워두곤 했던.

 그 애의 얼굴을 눈앞에 두고 싶지도 않다고 느꼈던 것은 그 애가 호그와트에 가고, 항상 그 곳의 이야기만 하고, 나는 끼어들 수 없는 세계의 말만 꺼내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 애의 말에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던 때부터였다. 아니, 그 애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와 다시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날 언니라고 불렀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들이 나를 단번에 돌아보았을 때.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맞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계집애라니. 내 아들이 열일곱이었다. 내 아들이 지금의 릴리 나이였다. 릴리의 아들이 지금의 릴리 나이였다.

 그 애가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답장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 일 년이 지났을 때. 덤블도어의 편지가 문 앞에 있었다.

 마구잡이로 들고 온 탓인지 릴리의 졸업앨범 모서리는 이곳저곳에 부딪쳐 흠집이 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멀쩡해졌다. 릴리는 그런 세계의 사람이었다.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서럽고도 억울해졌다.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내 동생. 특별할 수 없었던 나. 입을 벌렸다가 단 숨을 들이켰다. 내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정말로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계집애처럼.

 돌연 감정의 파도가 터진 둑처럼 새어나왔다.

 릴리가 죽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릴리가 죽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니었다.

 릴리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산 지 이십 년 만에,


 나는 그 애를 보러 가야 하는 것이다. 릴리가 죽지 않은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