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뢰넬의 시] 서문
- 1차창작 맛보기/뢰넬의 시
- 2015. 6. 3. 12:49
친애하는 슈레헬.
저는 지금 몹시도 괴롭고 혼란스럽습니다.
심연에 가라앉은 기억들이 악마처럼 제 발목을 잡아채고, 그 감촉에 피부 겉가죽이 바늘에 찔리는 듯 아픕니다.
어둠 속에는 늘 그랬듯 병적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어요. 소년시절 이후로는 본 적 없는 공포 사이로 아버지가 누르던 건반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끔찍하게 엉터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여 지난 새벽에도 펜을 잡아보았습니다.
언제나 도피처로 삼아왔던 것이 나의 시이건만, 이제는 음표마저도 저를 배반하는군요. 제멋대로 놀아나는 끔찍하고 사특한 것들이 저를 참으로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근래 제 시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봅니다. 가장 혐오하던 것을 고스란히 닮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차라리 저는 그런 추악함을 보지 않고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나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그 어떤 음악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무엇이라도 잘 아는 양 허장성세로 가득한 평가만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마치 무엇이라도 잘 하는 양 이어지지 않는 음표를 허공에 그리고만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나는 건 여지없이 불쏘시개로 쓰였습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면 죽는 생물입니다. 내 인생은 누군가에게 이해되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음악입니다. 존경하는 슈레헬. 당신은 악마에게 사로잡히지 말고 제 음악 속의 신성을 봐야 한다 말씀 하셨었으나, 저는 끝내 악마의 종인 모양입니다. 신의 목소리가 제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아, 신이시여. 차라리 영영 휴식할 수 있도록 이끄시질 않고!
근래의 저는 잠드는 것이 두렵고 새벽이 밝아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렵고 햇볕이 뜨거운 오후가 두려워요.
가장 존경하는 거장인 당신에게 이깟 쓰레기 같은 악몽 덩어리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저의 못난 면이라도 샅샅이 드러내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죄를 짓습니다. 사실 너무 많은 종이를 장작더미에 던져 넣다 보니 이미 당신의 생신이 되고 말아 급히 있던 것을 전부 주워 담았습니다. 담고 보니 양이 많아 그 중에서 그나마 들을만한 것들 몇 개를 간추려 보았지만 저는 뇌리를 괴롭히는 자괴와 회의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생일을 못 본 척할 수 없어 이런 것이라도 보내게 되었지만, 부디 홀로 비난하시고 공적인 자리에 올려 저를 부끄럽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립니다.
존경을 담아, 뢰넬.
‡
안드리아스 뢰넬의 음악은 특유의 풍부하고 유려한 선율로 유명했다. 그는 마치 다른 자들의 부족한 재능을 깔보기라도 하듯 몹시도 복잡하고 화려한 대위법을 즐겨 사용했다. 그가 곧잘 사용하던 폭력적이기까지 한 멜리스마가 숱한 젊은 음악가로 하여금 펜을 던지게 만든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뢰넬의 기법을 겉멋만 든 허장성세라 비난했던 음악가 쥘 페르난도의 일화는 당시 음악에 조예 깊은 자 치고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엄격하고 단조로운 화성을 이용한 쉽고 이해하기 편한 음악을 쓰던 쥘 페르난도는 구시대적 대위법과 화려한 멜리스마에 집착하는 뢰넬의 음악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상황에 젊고 건방진 천재가 늙은 선배에게 돌려준 말은 흔한 비방도 자기변호도 아니었다. 안드리아스 뢰넬은 쥘 페르난도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에게 헌정된 뢰넬의 op.147 ‘페르난도를 위한 콘체르토’는 이후 오백여 년 동안 가장 사랑 받는 조성 기악음악으로 남았다. 뢰넬은 이 음악에서 페르난도가 사용하던 엄격하고 단조로운 화성 양식을 그대로 모방했고, 수백 년 간 칭송 받게 된 ‘뢰넬식’이 여기서 탄생했다.
페르난도에게 헌정된 이 콘체르토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화음의 조화에 숫자를 이용해 장식음을 독주자의 기량에 넘겨 버렸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페르난도가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면서도 음악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고 있었다. 이는 쥘 페르난도의 화성적 이해 부족을 면밀히 비판했다. 순식간에 쥘 페르난도의 음악은 뢰넬의 음악에 밀려났다. 헌정 받은 곡이 쥘 페르난도의 음악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사실 안드리아스 뢰넬의 이름은 음악에 관심 있는 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대개 그 명성은 그의 음악이 지닌 전천후적인 복합성과 악마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천재성, 그리고 괴팍한 성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 안드리아스 뢰넬은 조용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좌절시켰으며, 자신에게 도전한 자는 어떤 수를 써서든 파멸시켰다. 대개의 경우 그가 사용한 수단은 본인의 끔찍한 천재성이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망가트린 최후의 상대. 자기 자신마저도 그의 천재성이 동반했던 광기가 불살라 먹은 것이다. 제 머리칼에 잉크를 퍼붓고 귀와 손을 칼로 난도질하며 자해하던 젊은 천재. 후대에 걸쳐 수차례 문학과 연극, 대중적인 영화의 주제로 사용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력적인 피사체였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훗날 음악사에 대해 논할 때는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로 대단했던 이 젊은 천재의 인생에 대해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 볼 것은 모두가 잘 아는 그의 악마적 천재성 따위가 아니다. 안드리아스 뢰넬의 영혼. 끝내 이 젊은 천재가 서른일곱의 나이에 자살을 하게 만들었던 정신적인 결핍. 그 근원이 되었던 유년의 증오. 서문의 편지가 고스란히 보여주듯 그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존중했던 거장 안토니오 슈레헬. 그리고 열병 같았던 인생에 대해.
그 누가 아름답지 않다 말할 텐가?
안드리아스 뢰넬의 이야기를 쓰며 필자는 그의 인생이 밟았던 음악적, 인성적인 행보에 집중하고 싶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어나가며 안드리아스 뢰넬이라는 한 젊은 천재, 더 나아가 정신이 불안정하고 섬세했던 예술가 청년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길 빌며 서문을 마친다. 잘 쓴 이야기에 앞선 서론 치고 본론보다 난잡하지 않은 것이 없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뢰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