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스 키엘체

※개척가문 심리 궁예질 주의

※사실 실제 개척가문은 훨씬...아무 생각 없고...망충하고...호구 같은 느낌의......상남자인 것.....(...




 3년 전쟁이 끝났다.


 지나치게 남발한 귀족의 작위와, 배운 것도 없이 갑자기 신분 상승을 겪은 촌무지렁이들이 베스파뇰라 곳곳에 넘쳐났다.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자들에게 귀족 작위를 내린 나라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분란들을 해결하고자 본국에서는 그들을 신대륙에 내쫓아 버렸다. 넘쳐나는 활동력을 긍정적인 방향의 노동력으로 바꾸기 위한 대처였다.


 그런 연유에서 개척가문에게 주어진 집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베스파뇰라의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전쟁터를 전전하다가 겨우 베스파뇰라의 귀족이 되고, 이제는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신대륙에 밀려난 자들은 그 곳을 ‘배럭’이라고 불렀다. 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막사였다. 군인들이 모여 사는 병영. 그러니까, 개척가문이라는 것은 본디 평화로운 시대, 종전 후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었던 셈이다.


 개척가문은 베스파뇰라의 전쟁귀족이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그들은 한때 브리스티아의 전사들을 도륙하며 살아왔고, 그 대가로 귀족의 작위를 얻은 인간들이었다. 돈도 필요했고 명예도 필요했다. 사실상 용병이었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칭송받았다.


 그렇게 3년 전쟁이 끝났다.


 오랜만입니다. 어젯밤에도 밤거리의 도적떼를 소탕하는 데 일조해 주셨다고는 들었습니다.”

 “올리비아가 우리를 멈춰 세우더군. 무슨 일이지?”


 브리스티아의 젊은 총독이 대꾸 없이 빙그레 웃었다. 화려하게 구불거리는 백금발이 특유의 우미한 낯 위로 흔들렸다. 그는 전형적인 귀족 집안의 젊은 도련님 같은 인상으로 수려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케스 키엘체의 얼음장 같은 벽안이 가늘게 휘어졌다.


 “제가 왜 가문을 불렀는지 아십니까?”


 그는 그렇게 묻고는 대뜸 턱을 괴었다. 잠시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정작 어떤 대답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 특유의 무신경한 표정이었다. 기실 그는 질문을 던져 놓고도 여전히 총독부에서 사용하는 은은한 황금빛 감도는 빳빳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넣고 있었다.


 케스 키엘체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개척가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베스파뇰라의 개 노릇을 하던 때에도, 희대의 마인 몬토로 자작과 얽혔을 때도, 그리고 그를 처리할 때까지도 케스 키엘체처럼 속내를 엿보기 힘든 인간은 드물었다.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라 자주 속고 자주 이용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케스 키엘체라는 인간은 항상 그랬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실 아닌 것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진실을 알려준 적은 없다. 언제나 상대의 반응까지 충분히 예상한 채 말을 하고, 그 말에 상대는 결국은 예외 없이 뜻대로 놀아났다.


 브리스티아를 패전의 불길에 몰아넣은 매국노의 자식으로서, 케스 키엘체는 베스파뇰라로부터 브리스티아 총독의 지위와 키엘체 대공의 신분을 선물 받았다. 3년 전쟁이 끝난 이래 그는 매 순간을 숨죽이며 몸을 낮추고 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자를 따라하면서. 가장 원망하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이윽고 총독이 된 키엘체 백작가의 영식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그래서 전쟁이었다.


 다소 방만한 얼굴을 한 채 연한 갈색 잉크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넣던 그가 펜을 다시 잉크병에 꽂아 넣었다. 시선을 내리깔고 천천히 종이를 둘둘 말아 끈으로 묶으며 케스 키엘체가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요즘 얼굴 보기 힘들군요. 귀 가문을 섭섭하게 대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다지 네게 뭔가가 서운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습니까?”


 케스 키엘체가 나른하고 평이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는 한동안 별 말이 없었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느긋하게 종이 위에 붉은 끈을 묶고, 키엘체 총독만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황금색 끈을 한 번 더 꼬아 묶었다. 일방적으로 불러온 사람이 말이 없으니 일방적으로 불려온 사람은 당연하게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잠시 케스 키엘체의 얼굴을 탐색하듯 살펴봤다.


 황금빛과 갈색이 뒤섞인 총독부 건물 가장 깊숙한 곳에 꼿꼿하게 앉은 케스 키엘체는 때때로 좁은 왕좌에 선 인간 같아 보였다. 그 인과 없는 침묵 사이에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정말로 좁고도 아득한 자리였다. 전쟁이 끝난 그 날로부터 케스 키엘체가 밟고 선 땅은 단 한 번도 단단한 적이 없었다.


 생각은 거기에서 멎었다. 그는 솔직한 말로 똑똑한 인간은 아니었고, 어려운 것보다는 쉽고 단순한 일이 편했다. 그래서 잠시 그 섬세하게 잘 만든 공예 인형 같은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냉정하게 대꾸했다.


 “빙빙 돌리지 말고 용건을 말해라.”


 케스 키엘체가 다시 가늘게 웃었다. 그는 유쾌하다는 투로 입매를 늘어트리더니 성심성의껏 묶은 종이를 든 채 책상 아래로 잠시 몸을 숙였다.


 요즘 저를 피하고 계십니까?”

 “내가 왜?”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그는 태연하게 대꾸하며 서랍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기이한 행동이었지만 별 말은 않기로 했다. 투명한 유리병의 입구는 단단한 나무 조각으로 막혀 있었다. 케스 키엘체는 잠시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뚜껑을 열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이해 못할 짓이었다.


 “애초에 우린 브리스티아의 인간이 아니야. 자주 얼굴을 볼 일이 있는 게 이상한 현상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나?”

 “물론 어찌 보면 귀 가문을 볼 일이 없다는 게 평화로운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빈 유리병에 돌돌 만 종잇조각을 톡 던져 넣은 케스 키엘체가 다시 그 뚜껑을 닫았다. 결국 이번엔 한쪽 눈썹을 휙 들어 올리며 의문을 표하고야 말았지만, 언제나처럼 명확한 답도 없이 케스 키엘체는 제 할 말만 했다.


 “중요한 일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한 입장에서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문은 제게 있어 가장 큰 조력자이고 전력입니다. 동시에 베스파뇰라 내부의 반-스트라타비스타 세력, 비올라케아와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니까 가끔씩은 안부라도 전해주시며 친분을 표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용건은 그뿐이냐?”

 “설마요.”


 케스 키엘체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유리병을 넘겼다. 일단 그것을 받아들고 유심히 살펴봤지만, 이로 보나 저로 보나 평범한 유리병에 불과했다. 그저 그 안에 키엘체 총독의 방식대로 매듭지어진 어떤 문서가 들어 있다는 것만이 특별했다.


 “기밀문서인가.”


 조국과 국민을 잃고, 권력과 민심을 동시에 잃은 어린 청년이 그 낯선 승자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케스 키엘체는 끝내 그것을 일구어냈다. 이제는 도리어 베스파뇰라 내부에 협력자들을 두기까지 한 실질적인 국제정세의 거물이었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시민들에게서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베스파뇰라를 상대하는 반-스트라타비스타 연합의 주축이고 실세였으며, 폭풍의 핵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케스 키엘체가 소속 명확하지 않은 신대륙의 개척민에게 용건이랍시고 건넨 그 종잇조각은 지당 베스파뇰라에 숨겨진 이름 모를 협력자들에게 보낼 중요한 문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 말에 그는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웃을 때의 케스 키엘체는 손아귀에서 놓친 풍선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어린 소년처럼 막연하고도 아득한 얼굴을 했다.


 실제로도 그는 놓친 풍선처럼 잃어버린 것들이 많았다. 존경하던 아버지, 안락한 집안, 사랑하는 조국, 어린 시절의 친구들, 동생의 신뢰, 친척처럼 아껴주던 시민들.


 그 인생에서 가장 길고 끔찍한 시간의 일부를 함께 견뎌 온 부관 올리비아가 말했듯, 키엘체 영식의 유년과 평화는 아마 어느 순간 간데없이 증발했다. 몹시 불행한 유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기이하고도 어딘지 한 꺼풀 잃어버린 것 같은 얼굴로, 케스 키엘체는 매번 단정하고 우아한 미소만 그림처럼 머금었다. 그리고 그것에 협력자들의 뱃속은 어쩐지 불쾌하고 악한 것들로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아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케스 키엘체가 단조롭게 말했다.


 “바다에 띄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눈을 깜박이며 그 얼굴을 바라보려니 케스 키엘체가 늘어트린 입술을 조금 더 접으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닫았다. 대답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왔다.


 “지금 농담을 하자는 건 아니겠지.”

 “농담으로 보이십니까?”

 “총독, 미쳤나?”

 “유감스럽지만 멀쩡하군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문,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제 부탁입니다.”


 옆으로 밀어 뒀던 서류를 다시 책상 중앙으로 끌어오며 그가 깃털 달린 펜을 다시 집었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눈으로는 서류를 살피다가 단조롭게 덧붙였다.


 “바다에 띄워주십시오. 필요한 일입니다.”

 “누군지 모를 자의 손에 들어갈 텐데?”

 “그럴 수도 있지요.”

 “아니면 특정하지 않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목적인가?”

 “글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저 바다에 가라앉을 수도 있을 텐데?”

 “이번엔 꽤 여러 가지 생각해보시는군요. 귀 가문도 이젠 많이 발전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구구절절 궁금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케스 키엘체가 사근사근하게 대꾸했다.


 결국 그는 입을 다문 채 케스 키엘체만 사납게 바라보다가 유리병을 품에 넣었다. “그냥, 그냥 궁금해서 그랬다. 실례였다면 미안하게 됐어.” 결국 개척가문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케스 키엘체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미하게 미소 짓는 꼴이 더더욱 보기 싫어졌다.


 ‘너구리같은 총독 자식.’


 그는 브리스티아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날을 떠올렸다. 브리스티아 최대의 군사도시 키엘체에 도착해 처음으로 이 발전한 도시를 올려다보던 그 날을.


 형님 부부의 부고를 들은 가문 사람을 위해 따라왔다가, 제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리라고 말하며 그림처럼 웃는 인간을 만났다. 젊은 나이에 그는 몹시도 많은 것을 이뤄낸 상태였다. 그리고 그 후 달성한 것들은 그 이전에 해냈던 일들보다도 더 대단했다.


 부관인 올리비아가 말했듯 그의 유년은 아마 상상 이상으로 불행했을 것이고,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였지만 이제는 친구라는 단어로는 서로를 부르지 않게 된 옛 가신 JD가 말했듯 하물며 지나가는 어린아이조차도 케스 키엘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케스 키엘체는 한순간에 타인의 의도에 의해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긴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브리스티아의 인간들을 수도 없이 살해하고 그 피를 짓밟아 영광을 차지한 인간으로서 연민이 있었다.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인간이 아닌 기계였지만, 어찌되었든 그 날의 전장 어딘가에서 분명 누군가를 무참히 베어 넘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그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조차 매번 시험을 하듯 의중을 떠보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모든 일을 혼자만 안 채 일을 진행해버리는 것이 좋은 행동일 수도 없었다.


 “더 부탁할 것은?”

 “없습니다. 물론 귀 가문이 함부로 문서를 열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내가 읽으면 안 되는 내용인가?”

 “읽으면 안 될 것까지는 없지만, 그러지는 않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냥 차라리 읽지 말라고 해.”


 신경질적으로 지껄인 그가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후후, 특유의 사근사근한 웃음소리를 내며 케스 키엘체가 유하게 대꾸했다. “실례했습니다. 읽지 말아 주세요.” 드물게 고분고분한 어조였다.


 결국 그는 대꾸도 없이 총독부를 벗어났다. 브리스티아 최고의 항구도시인 만큼 총독부 건물을 벗어나는 순간 파도소리처럼 바닷바람이 밀려왔다. 찝찌름한 냄새에 그는 결국 미간을 찌푸렸다. 케스 키엘체를 상대할 때면 그는 언제나 미궁을 헤매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는 말 그대로 오리무중, 말을 섞어도 속내를 알 수 없고 눈을 바라봐도 시선을 쫓을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바다. 파도. 비린내. 바람. 머리칼이 이리저리 뒤집히고 흔들렸다.


 사실 맞다. 그는 케스 키엘체를 피하고 싶었다. 키엘체에 올 일은 적지 않게 있었지만 총독부에 접촉하게 될 일은 스스로 삼갔다. 케스 키엘체는 언제나 그랬듯 인간의 심리와 사고방식에 놀랍도록 예리했다.


 사실 브리스티아의 영웅들이 가문에 의탁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할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눴었고, 각자가 한 만큼 당하기도 했다. 이미 전쟁은 끝났으며 신대륙에서의 일들로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후였다.


 그러나 케스 키엘체는 달랐다. 3년 전쟁이 끝날 무렵만 해도 케스 키엘체는 도시의 아이들 모두에게서 선망 받는 지도자였으며 똑똑하고 리더십 있는 미래의 영주였다. 때때로 소년들을 불러모아 비밀 기지를 만들고 함께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려 깊고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는 오로지 전쟁에 의해, 시민들을 더 이상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체르니 키엘체의 말 한마디에 의해 돌아갈 곳도 기댈 곳도 없는 방랑자가 되고 말았다. 아마 어린 그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을 숙부 같은 가신이 아버지의 손에 참수 당했고, 유년을 함께 뛰놀던 친구에게서 피눈물 섞인 저주를 들었다. 조국을 군화발로 짓밟은 원수들 앞에서 그는 비굴하게 아첨하며 살아남았고, 자신을 저주하는 시민들 앞에 서서 당신들과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를 구하겠노라 선언했다.


 3년 전쟁이, 집속 마법포가 한 인간의 인생을 그렇게 망가트렸다.


 ‘쓰레기 같은 놈. 전부 알면서 항상 그런 식으로.’


 그때에는 돈이 없어서, 명예가 필요해서, 부와 권력을 얻어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와 전쟁에 참가한 것 자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집속 마법포는 사용되었을 것이고, 그 한 명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깟 사실들이 아니었다.


 케스 키엘체와 개척가문이 일종의 협력관계가 된 후 서로의 필요에 따라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개척가문이 키엘체에 왔듯, 케스 키엘체도 때로는 신대륙에 자리 잡은 개척가문의 ‘배럭’에 발을 들였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는 베스파뇰라의 것으로 가득한 군인의 요람을 보며, 케스 키엘체가 무엇을 생각했을 지에 대해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과 피해의식이었다. 열등감이었다. 앞서가서 제멋대로 판단하는 못된 버릇이었다. 최악의 경우만 가정하는 망상 병이기도 했다.


 “아르모니아.”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전에 실종된 형을 쫓아 흔적을 찾는다던 아르모니아 출신의 젊은 청년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는 행동거지가 순진하고 예의바른 청년이라, 가능하면 도움을 줄 요량에서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전에 키엘체에서 함께 행사를 구경하다가 그의 형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 후 침울해진 청년을 그대로 둔 채 신대륙에 돌아갔었다. “아르모니아.” 그가 다시 한 번 병적으로 뇌까렸다.


 아르모니아는 폐쇄적인 신성국가였다. 최근 케스 키엘체의 공격적이고도 적극적인 외교로 인해 항로가 뚫렸다지만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면 한동안은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불편해서 일단 제멋대로 달아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생각에 잠길 시간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가문의 일원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키엘체와 바이런을 잇는 그림자 호를 타기 위해 항구까지 걸어가던 그가 불현듯 발을 멈추었다. 그는 품을 뒤져 유리병을 찾아냈다. 케스 키엘체가 맡긴 것. 꽉 닫혀 있는 나무 뚜껑과, 투명한 병 안에 보이는 은은한 황금빛의 빳빳한 종이를 바라보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그 뚜껑을 잡았다.


 ‘개 같은 자식.’


 그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



 “잘 다녀오셨습니까?”


 비행선이 천천히 정비소로 들어가 안착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키엘체의 연구단지는 여전히 깨끗한 흰색 대리석이 빼곡하게 깔려 눈부시게 빛났다. 그 가운데에서 정신없이 휘날리는 백금발이 마치 바닥에 반사된 태양 빛 같기도 했다. 비행선이 무사히 제자리로 가는 것을 비스듬히 바라보던 케스 키엘체가 웃는 낯으로 그를 향해 섰다.


 한동안 얼굴도 보이지 않으시던 분이 갑자기 아르모니아의 성녀님을 대동하고 총독부에 나타나셔서 놀랐지 뭡니까.”

 “그땐 사정이 있었다. 성녀님께서 워낙에 바라셔서.”

 “그랬군요.”


 케스 키엘체는 마치 힐난하는 어조로 말해 놓고도 여전히 그다지 크게 연연하지 않는 눈치로 툭 대꾸했다. 변함없이 대수로운 일을 처리하는 듯 나긋나긋하면서도 사무적인 태도였다.


 ‘아, 오랜만에 봐도 짜증나는 얼굴이군.’ 잠시 그 색 옅은 하늘색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체념하듯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려 시야를 조금 어지럽혔다. 케스 키엘체는 마치 흥미로운 것을 바라보듯 그를 빤히 응시하다가 또 그림처럼, 미미하게 웃었다.


 “심연과의 성전이 아르모니아 교단 내부의 문제와 겹쳐 꽤나 큰 사달로 이어졌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당신 개인에게도 상상 이상의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뭐?”


 멍청히 되묻자 케스 키엘체가 얇은 입술을 느슨하게 늘어트렸다. 여전히 그의 연하늘색 눈동자는 방금 얼린 얼음처럼 청량한 냉기가 묻어났지만, 드물게도 정말 유쾌한 사람 같은 얼굴을 했다.


 “총독, 굉장히 성격 나빠 보이는 얼굴이군.”

 “저런.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아니, 지금도 그래.”

 “설마 그렇겠습니까.”


 곧잘 쓰곤 하던 장난식의 말투로 지껄인 케스 키엘체가 웃는 낯을 지우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미형의 얼굴과 달리 기본적으로 키가 훤칠한 편이었다. 비행선에서 내린 후 연구소의 화단 테두리에 앉은 채 늘어져 있던 몸 위로 길쭉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잠시 의심스러운 눈치로 케스 키엘체의 손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 손을 힘 있게 악수하듯 잡고 일어섰다.


 케스 키엘체는 일으켜 세워 준 이후의 일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던 눈치로 깔끔하게 손을 거두고 돌아섰다. 결국 보여주기 식의 퍼포먼스라 이거지. 이젠 그다지 낯선 일도 아니었다. 앞장서서 부관과 나란히 걷는 케스 키엘체의 등을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바라보던 그가 불현듯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어이, 총독.”


 케스 키엘체가 고개만 조금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브리스티아 총독이 즐겨 갖추는 의장인 붉은 코트 자락이 새하얀 연구 단지 위로 너울너울 흔들렸다. 마치 시뻘건 파도 같았다.


 “그때 그 병 말이야.”

 “네, 말씀하시죠.”

 “열어 봤었다. 미안.”


 그 말에 케스 키엘체는 잠시 대꾸 없이 그의 얼굴을 낱낱이 살폈다. 그러다가 돌연 주먹 쥔 손으로 비스듬히 입가를 가리며 눈매를 늘어트렸다. 그는 매번 잘 웃는 인간이었지만 다급하기까지 한 손놀림으로 입가를 가리는 일은 드물었다. 여전히 젊고 미려한 얼굴을 한 채 브리스티아 총독은 드물게 웃음기 번진 목소리로 태연히 대꾸했다.


 “역시 안 열어 보셨군요.”

 “뭐?”

 “귀 가문의 그렇게 알기 쉬운 점을 좋아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아군 타입이지 않습니까.”


 잠시 기가 차서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결국 표정이 일그러지자 케스 키엘체가 다시 유쾌한 심경을 감추지 않으며 웃어 버렸다. 그는 몹시 솔직한 태도를 보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공들여 조각한 것 같은 유리 인형 같은 낯이었다.


 “조금 발전하셨나 했더니, 놀랍도록 여전하시네요.”

 “무슨 의미냐.”

 “좋은 뜻에서 한 말입니다. 곡해해서 듣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케스 키엘체가 사무적이고 외교적인 어조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결국 그 우아하고도 조용한 웃는 얼굴 앞에서 그만 말을 잃고 헤매다가 다시 체념하고 말았다. 그는 그저 걸음을 빠르게 해서 케스 키엘체와 그의 부관 올리비아를 따라잡았다. 연구단지의 입구에 비스듬히 선 채 케스 키엘체의 주변을 경계하던 JD는 눈이 마주치자 까딱 목례를 해 보였다. 그 인사에 맞받아 고개를 까딱이고도 불쾌함이 가시지 않은 그가 사납게 씹어 뱉었다.


 “내 인생에 최고의 악몽을 꼽자면 네놈을 만난 일일 거다, 총독.”

 “의외로군요. 제게 협력하기로 했던 게 제일 갈 줄 알았는데요.”


 케스 키엘체는 마치 그 말마저도 짐작했다는 듯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매끄럽게 대답했다. 여전히 총독의 말투는 몹시 태연했고, 심지어 장난스럽기까지 했다. 그 얄미운 낯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잃었다.


 하하, 결국 케스 키엘체가 소리 내어 웃음을 뱉었다. 항상 웃는 낯을 지우지 않는 브리스티아 총독은 유래 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는 조금 고개를 기울이며 가볍게 눈을 감고는 어린아이라도 대하는 투로 나긋나긋하게 이렇게 말했다.


 “귀 가문의 능력이 필요한데 자리에 계시지 않아 곤란한 일이 몹시도 많았습니다. 협력 관계에 있으면서 너무 무책임하시군요. 뭐, 결국 이렇게 오셨으니 지금껏 밀려 있던 몇 가지 일을 부탁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지요.”

 “얼마나 더 등골을 빼먹을 생각이냐…….”

 “저를 가문의 일원으로 포함시키게 해 드린 값은 비쌉니다.”


 단조롭고도 당연하다는 투로 툭 대꾸한 그는 더 이상 대답도 듣지 않고 올리비아에게서 문서 한 뭉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독단적이고도 일방적인 태도로 휘휘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저녁 식사나 함께 하시죠. 일정을 빼 두겠습니다. 음, 다음 주 수요일 정도면 괜찮겠군요.”


 변함없이 제멋대로였다.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케스 키엘체가 태연히 덧붙였다.


 “귀 가문에게 급한 일이 없음은 알고 있습니다. 설마 거절하실 생각이신 건 아니겠죠.”


 조금 서운할 겁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면상 앞에서 결국 다시 대꾸할 말은 사라지고 말았다. 입을 다물며 어금니를 소리 나게 부드득 간 그가 끝내 한 번 더 생각했다. ‘음흉한 총독 자식!’


 ‘저런 속 시꺼먼 놈한테 미래를 맡기고 있다니, 브리스티아의 앞날이 걱정되는군!’



 **



 “—라고 생각하고 계실 것 같지 않나요?”

 “케스님께서 계시기에 지금의 브리스티아 독립군이 있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 장난 식으로 한 말에 딱딱한 어조로 올리비아가 대꾸했다. 케스 키엘체가 부드럽게 웃으며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건달과 퇴역군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키엘체의 뒷골목을 지나면서도 그는 그다지 경각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이 딱딱하고 고지식한 부관에게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는 듯 입매를 늘어트리고 눈을 휘었지만, 곧 별다른 대꾸 없이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올리비아가 잠시 발을 멈췄다가 다시 빠르게 그를 따라잡았다. 순간 올리비아의 머릿속으로 지나간 것은 케스 키엘체가 실종되던 날의 밤거리였다. 도망치던 케스 키엘체와, 배신자 올리비아가 마주쳤다.


 그런 상황에조차 케스 키엘체는 올리비아를 걱정하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을 왜 안 하겠나. 배신자의 아들로서 베스파뇰라에서 정상의 위치에 올라 브리스티아의 총독이라는 자리에 서 독립의 꿈을 꾸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자네인 것을.’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 몹시도 나긋나긋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만신창이가 된 총독부 건물의 앞에서 케스 키엘체는 홀로 꼿꼿이 선 채 올리비아와 마주 섰다.


 단 한 번도 케스 키엘체는 올리비아에게조차 말을 놓은 적이 없었지만,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리비아를 자신의 아랫사람으로 대했다. 결국 올리비아는 케스 키엘체를 죽게 둘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케스 키엘체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신뢰하는 아군으로 여기던 사람이 올리비아였다. 마찬가지로 올리비아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섬겨 오고 그 사상과 성장을, 끈질기고 독한 사고방식을 그 누구보다도 인상 깊게 남긴 것은 케스 키엘체였다. 결국 올리비아는 일평생 쌓아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케스 키엘체를 도주시켰다.


 ‘자네는 지금 내가 자네를 저주하고 분노에 찬 말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군. 배신자의 권리를 누리려는 건가? 그런 이유에서라면 난 자네를 비난하지 않아.’


 잠시 그 날 밤의 일을 떠올리던 올리비아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조용히 되물었다.


 “지금 절 괴롭히시려는 겁니까?”

 “진심입니다.”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너무 좋아하시는 게 아닙니까?”

 “설마요. 진심으로 한 얘기입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


 그는 여전히 태연히 대꾸하고는 다 읽은 서류를 다시 올리비아에게 넘겼다. 반쯤 장난 섞어 건넨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특유의 세공된 유리 인형 같은 무기질적인 휘장을 두르고 있었다. 일리에 측과의 외교와 관련된 문서였다. 그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에 따라 앞으로 브리스티아-베스파뇰라 2차 전쟁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


 그 생각에서 멈춘 올리비아가 짐짓 인상을 찌푸리며 새로운 서류를 케스 키엘체의 손에 넘겼다. 새 서류를 받아 가볍게 훑어보면서 케스 키엘체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올리비아는 그제야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불현듯 과거 레놀드 감찰관을 막 몰아내고 실질적으로 키엘체의 전권을 손에 넣었던 그 날, 배신자로 다시 재수감되었던 올리비아에게 케스 키엘체가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특히 올리비아, 자네는 조금 더 건방지게 굴어도 좋아.”


 올리비아는 그렇게 한동안 케스 키엘체의 얼굴도 보지 않고 있다가 조금 시선을 내렸다. 그들은 이제 공방을 지나 총독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뒤에서 줄을 지어 따라오는 친위대들이 마치 붉은 깃발처럼 펄럭였다.


 잠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올리비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는 또 하나의 독립군 소속원을 떠올렸다. 케스 키엘체의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케스 키엘체를 총독으로서도, 독립군 수장으로서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래도 케스 키엘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방금 스스로 뱉은 말을 빌리자면, 그는 조금 더 건방지게 굴어도 좋을 사람인 것임에 분명했다.


 “그런 것 치시고는 그를 괴롭히는 걸 너무 즐기시는 게 아닙니까?”

 “괴롭히다니요. 쌍방에 대한 친분과 애정의 과시입니다.”


 마치 무슨 생각을 하다가 대뜸 물었는지 전부 짐작한다는 투로 케스 키엘체가 유들유들 지껄였다. 올리비아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올리비아는 케스 키엘체를 알아도 너무 잘 알게 되고 말았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눈치 채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가문 사람들의 편의를 최대한 살펴 근시일 내에 날짜를 정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절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그쪽에 맞춰 날짜를 잡되, 가문 사람들에겐 전날이나 당일에 통보하는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우리 너무 오래 알고 지낸 것 같군요.”

 “과찬이십니다, 각하.”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의 대꾸를 들으며 케스 키엘체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서류로 옮겨간 얼음 같은 빛깔의 눈동자가 견고하고 서늘하게 일렁였다.


 그는 세계 각지에 어느 정도 믿을만한 정보처를 심어두고 움직였지만 신성시국 아르모니아의 국가적 특성상 그곳의 정보는 언제나 불완전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자면 심연의 군대가 나타났다는 사실, 그것을 저지하는 과정에 어떤 개척가문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케스 키엘체가 접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일이 쉽게 덮기 힘들 정도의 큰 문제였다는 것을 시사했다.


 몇몇 주교의 실각과 성기사단의 와해와 재집결, 메멘토 모리의 반란 의혹, 패트릭 라이언의 생존 소식과 이어진 반발분자 회동, 과거에 묻혀 있던 빛의 이면, 교단에 대한 성녀의 반발과 연이은 이단재판.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아르모니아에 있었던 일이 여간 일은 아니었음이 명백했다.


 심지어 사건이 종결되어 갈 무렵 성녀 엘렌 아니스가 교황청 내부에서 암살당할 뻔한 사건까지 터졌다. 그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 듣고 있던 케스 키엘체의 눈앞에 갑자기 그 위험천만한 성녀가 개척가문과 함께 나타났으니 그 순간의 당혹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르모니아의 성녀님.’ 구름처럼 흔들리는 푸른 은발 아래로 성녀의 옅은 청보라색 눈동자가 그를 빤히 올려다봤다. 소문으로만 듣던 성녀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빛나는 브리스티아의 별이시여.’


 ‘신께서 당신을 시기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려 하십니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충 훑어 본 서류를 접어 한 손에 느슨히 들며 케스 키엘체가 고개를 기울였다. 환한 빛깔의 백금발이 굽이쳐 떨어졌다. ‘선택의 때가 올 겁니다. 당신의 선택이 수많은 사람을 웃게도, 울게도 만들 것이고 많은 생명을 살게도, 죽게도 할 겁니다.’


 그는 불현듯 총독부의 건물을 올려다봤다. 기이할 정도로 크고 끔찍한 사건들에 자주 휘말리는 그의 믿을만한 아군을 떠올렸다. 베스파뇰라 전쟁귀족 출신인 소속 없는 싸움꾼. 연루된 면면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들뿐이었고, 연루된 사건의 어둠은 그 이상이었다.


 아득하고 차가운 벌판. 어린 시절부터 키엘체에 불어오던 바닷바람이 황량하고 깔끔한 돌바닥 위를 스산하게 스쳤다. 케스 키엘체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박이다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기이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는 올리비아에게 가타부타 무언가를 해명하지 않은 채, 그는 총독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신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글쎄요, 아르모니아의 성녀님. 브리스티아 총독 케스 키엘체가 다시 그린 듯 살가운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연한 갈색과 황금빛, 붉은 빛이 뒤섞인 총독부의 집무실에 들어서며 그가 조금 체념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성녀께서 뭐라고 여기실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단 한 번도 그 분께 사랑 받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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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케스 2차 시나 언제 나오졋(쥴쥬륮륮류쥴

케스 2차 시나 언제냐고오오오오오(콰오카아코왘와쾅콰와코아쾅

예언만ㄴ 저렇게 던져 놓고 뜬금없이 과거 사건이라니 아악 아아악 순서 왜 아아악

아르모니아 사건 다음에 어떤 일이 터지는 건데에에엣 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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