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Y 2015. 11. 14. 04:03

 03.

 나는 런던의 내 작은 렌트하우스의 침대에서 깨어났다. 바깥 하늘은 빌어먹게도 예쁜 별로 가득했고, 나는 씨근덕거리며 전화를 찾아 문을 열고 나왔다. 당장에라도 릴리 계집애에게 전화를 걸어 제임스 포터의 망할 친구 시리우스 블랙을 비난하고, 그들 마법사의 생리에 진저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부엌과 이어진 거실로 막 나섰을 때 나를 맞은 것은 적막한 집안도 전화기도 아니었다.

 “일어났군.”

 내 작은 안락의자에 좋을 대로 앉아 다리를 꼰 채 신문을 보고 있던 시리우스 블랙이었다. 그는 심드렁히 지껄이더니 또 아무렇지 않게 신문 한 장을 넘겼다. 이제 보니 그 신문은 아주 가관이었다. 사진 속의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한 번 더 기절을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오래 기절해 있었던 탓인지 이번엔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시리우스 블랙을 비난하고 내쫓을 말과 방법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 시리우스 블랙은 마치 제집처럼 자연스럽고 우아한 놀림으로 옆의 작은 테이블에 두었던 머그잔을 집어 드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컵이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고르지 않고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내가 빽 내지른 탓에 입천장이라도 데였는지 시리우스 블랙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조금 내밀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반문했다.

 “자다 깨서 하는 말 정말 사랑스럽군, 미스 에반스! 그 부스스한 머리칼이나 좀 정리하지 그래? 내가 데려다 준 거 기억 안 나? 난 당신이 기절했다는 얘기를 들은 내 절친한 친구가 나를 신나게 조롱하고 비난하며 당신이 깰 때까지 집 지키는 개가 되어 보살피다가 다시 전화를 하라는 폭언까지 들었단 말이야! 대체 여자들은 왜 툭하면 기절하는 거야? 머글들이 좋아한다는 포르쉐로 데려다주기까지 했는데——.”

 “오, 그 빌어먹을 포르쉐 비행기 말이지!”

 “‘비행기’?”

 “하늘을 나는 탈 것 말이야——내가 왜 이런 걸 설명해야 하는 거야, 이 몰상식한…….”

 “빗자루 말이야?”

 “아니, 비행기는 쇳덩어리라고, 너희가 타는 그 말도 안 되게 비상식적인 빗자루 따위와는 다른…….”

 “쇳덩어리가 하늘을 난다고? 그거 정말 비상식적인데.”

 “제발 닥쳐!”

 내가 크게 내지르고 숨을 고르며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내리고서야 시리우스 블랙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내가 빌어먹게 좋아하는 머그컵을 잘근잘근 씹어가며 날 보다가 훌쩍 한 모금 더 마시고 있었다.

 “넌 예의라는 걸 모르니?”

 “나처럼 예의밖에 모르는 집에서 자란 인간도 드물걸.”

 “웃기지 마! 야밤에 남의 집에서 그 꼴을 하고 앉아 있다니,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개판으로 받았지.”

 시리우스 블랙이 냉소적으로 지껄이며 턱을 치켜들고 코끝을 찡긋거렸다. 그는 내친 김에 한 모금 더 마셨고 내 뱃속은 또 뒤집어졌다.

 “이런 제임스 포터 같은——!”

 “아, 저런. 칭찬 고마워.”

 “게이인 게 틀림없어.”

 내가 들으라는 듯 치를 떨며 지껄였지만 시리우스 블랙은 태연한 얼굴로 신문 한 장을 더 넘기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임스가 여자였다면 난 분명 그 앨 덮쳤을 거야. 내 인생을 완벽하게 즐겁게 해 줄 상대는 제임스뿐이거든. 그 부분은 부정할 수 없군. 제니 포터? 뭐야, 정말 괜찮은데?”

 “너 정말 게이니?”

 “그렇지만 여자가 좋아서 유감.”

 장난스럽게 대꾸한 시리우스 블랙은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 하나를 신경질적으로 찢어냈다. 뭔 내용이기에 그렇게 반응하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시리우스 블랙이 그것을 제 옷의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뺨과 이마를 손등으로 두어 번 누르고 다시 고개를 들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좋아, 네 그 아주 귀중한 친구 분께 전화를 해줄 테니 이젠 집에 가라고.”

 “제정신이야? 자는 애들 깨울 셈이야? 어쩜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지?”

 “그 애들 깨우는 건 안 되고 나한테 지킬 예의는 없니? 그건 내 안락의자고, 여긴 내 집이고, 그건 내 머그컵이야! 내가 가장 아끼는!”

 그제야 시리우스 블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들린 머그컵을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휙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그는 아예 내 쪽으로 상체를 조금 기울여 건방진 미소를 입가에 걸고는 씨익 웃으며 한 모금 더 마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한 박자 참아냈다. 소리를 질러 봤자 통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애초에 말귀를 알아듣는 인간도 아니고!

 “너 언제까지 있을 셈인데?”

 “날이 밝으면 전화하자고.”

 그 뻔뻔한 대답에 여간 어처구니가 없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미간을 누르며 혈압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다가 이윽고 최대한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여긴 젊은 여자 혼자 사는 집이야. 그것도 약혼자가 있는. 네가 만일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내 여동생의 친구야.”

 “나는 릴리 에반스의 친구가 아니야. 제임스 포터의 친구지.”

 시리우스 블랙이 단호하게 대꾸하더니 신문을 훌훌 접어서 제 무릎 위에 놓고는 얌전히 머그잔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또 훌쩍 마셨다. 내가 최대한 침착하게 그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와중에 시리우스 블랙이 천천히 덧붙였다.

 “사실 내가 당신을 데려다주겠다고 한 건 그래서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페투니아. 어차피 내가 할 말을 끝내고 나면 전화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테니 조금 기다리지 그래?”

 “오, 그거 정말 대단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의 태도로구나.”

 “대화라니?”

 그는 다시 한 번 냉소적으로 웃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시리우스 블랙이 날 빤히 바라보며 여상스럽게 대꾸했다.

 “난 대화를 하러 오지 않았어. 얘기를 하러 왔지. 당신은 듣는 역할이야, 페투니아. 유감인걸.”

 “뭐?”

 “당신. 릴리를, 그러니까, 당신 여동생을 질투하고 있지?”

 그 끔찍하고도 갑작스러운 발언에 예상치 못하게 공격받은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에 앞서 시리우스 블랙이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고 컵에 든 것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말이 돼? 어떻게 자기 동생을 질투할 수 있지?” 그러더니 그가 심드렁하게 지껄였다.

 “아니, 그냥 우리를 모두 질투하고 있나? 당신은 갖지 못한 마법을 지닌 사람들을 말이야.”

 “닥쳐! 말이면 다인 줄 알아? 너 당장 이 집에서 썩 꺼지지 않으면——.”

 “썩 꺼지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난 당신 여동생처럼 욕을 먹으면서도 당신에게 붙어 있을 이유가 없고 제임스처럼 릴리 에반스에게 붙어 있을 필요도 없어. 날 어떻게 쫓아낼 건데, 그 대단하신 머글이?”

 오, 나는 너무 끔찍하게 열이 받은 나머지 화 낼 기운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너 뭐 하자는 거야?”

 “그냥 좀 얘기를 하러 온 거라고 말 했잖아.” 시리우스 블랙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난 당신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하러 온 것뿐이야.”


 **


 04.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니?”

 “부탁이라니? 나는 지금 당신한테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페투니아. 요컨대 나는 릴리 같은 정의파도, 제임스같은 외골수도 아니라는 거지.”

 나는 그 말이 몹시도 어처구니없어서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시리우스 블랙의 앞에 섰다. 그제야 시리우스 블랙이 비스듬히 턱을 괴고는 내 시선을 마주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들어 봐, 페투니아. 나한테 제임스는 정말로 중요한 친구라고.”

 “오, 그래. 네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알겠어.”

 “재미도 없는 농담 반복해서 들어주려니 정말 끔찍하군.”

 시리우스 블랙이 버릇처럼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그 제임스한테 릴리 에반스는, 정말 개인적으론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지만 아주아주 소중한 여자다 이 말이야.”

 “그래, 그 빌어먹을 자식이 릴리 그 계집애한테 죽고 못 사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러니까 당신이 릴리 에반스에게 그 불합리한 감정을 퍼부으면 제임스가 피해를 보고, 릴리가 너무 소중한 제임스는 당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빌빌거리고, 당신은 그런 제임스를 코웃음 치며 뭉개고,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 나는 그 꼴을 보는 게 아주 배알이 꼴린다는 거지.”

 그는 침착하게 지껄였지만 내용은 전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았다. 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기어코 이렇게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이 정신 나간 악당아! 내가 언젠가, 상상만으로도 아주 끔찍하지만 내 제부가 될지도 모르는 인간이랑 내 여동생한테 어떻게 대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말했잖아, 제임스는 내 영웅이라고!”

 시리우스 블랙이 맞대고 악다구니를 썼다.

 “당신은 내 영웅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있단 말이야! 제임스는 내 영웅이라고, 내 태양이야! 당신이 뭔데 내 태양을 끔찍하게 무시하지? 당신이 뭔데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거리의 여자 보듯 경멸해? 그렇게 동생이 싫으면 차라리 평생 얼굴 맞대지 말고 살아!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혼자 열등감 느끼면서 그걸 떠넘기려 들지 말고! 괜히 잘 살고 있는 그들 앞에 나타나서 결혼할 남자를 소개시켜준다느니 남자친구를 평가한다느니 언니 노릇 하려 들지 말란 말이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왜 런던에 왔는지 몰라? 난 그 계집애랑 다신 얼굴 안 마주치고 살 생각이었어! 실제로도 그러고 있었고! 이십년 동안 말이야!”

 “이십년? 태어날 때부터 당신과 릴리가 한 집에 살았는데 어떻게 안 보고 살았을까?”

 시리우스 블랙이 빈정거렸다. 나는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은 그딴 말장난을 받아쳐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다음 말을 장전하는 순간 시리우스 블랙이 조금 진정한 어조로 다시 한 번 안락의자에 몸을 푹 묻었다.

 “오, 그래, 페투니아.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 당신 호그와트에서 머글 태생이 무슨 취급을 받는지 알아?”

 “알 게 뭐야, 빌어먹을!”

 “딱 당신이 릴리 에반스를 보는 눈으로 보지. 거리의 창녀 보듯, 더러운 거지를 보듯, 구질구질한 소매치기를 보듯 본단 말이야! 그렇게 취급 받는 머글 태생 애들이 유일하게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게 어딘지 알아? 집이야! 당연히 집이겠지. 당신들네 가정은 적어도 그 어두컴컴한 미치광이 소굴하고는 다른 것 같아 보였으니까! 그런데 릴리 에반스는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어! 방학 때도 최대한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아 있다가 그 누구보다 먼저 역에 나타나곤 했어. 7년 내내 그랬지. 가족에 대해 물어보거나 집에 놀러가고 싶다는 친구들에겐 자기 언니는 자기가 마법사인 게 아무래도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니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언제나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가며 말했어. 오, 사실 그래, 당신 말처럼 내가 알 바 아니야. 그런데 그런 릴리 에반스가 내 친구 제임스 포터의 여자 친구가 되었단 말이야. 솔직히 저 둘은 큰 문제가 없다면 저대로 결혼을 하게 될 게 분명하고, 그럼 그들은 당신과 일평생 얼굴을 마주대고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럼 제임스와 릴리는, 마법사로 태어나 마법사로 자랐고 이제는 각각 완성된 마법사가 된 그 녀석들은 당신 앞에선 잘 알지도 못하는 머글 문화에 대해 아는 척 굴어야 하고 그걸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고, 또 당신의 심기가 언제나 상할까 전전긍긍해야 한다고!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도 불행한 생활이야? 좋아, 난 당신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 왔어, 당신이 그걸 용인하지 않고 자기 여동생을 괴롭히는 일에 여전히 즐거움을 느끼며, 여전히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이 기쁘다면 나는 마법사가 머글을 압제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을 쓸 생각이야. 주제 넘는 건 나도 알지만 내게 제임스는 그래!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너야!”

 차갑게 쏘아붙이는 시리우스 블랙의 말을 내가 짜증스레 끊어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너라고! 그 망할 계집애를 보며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릴리, 릴리, 입이 마르도록 그 애 이름만 부르는 부모님 아래에서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넌 전혀 모르겠지! 이런 망할, 내가 왜 이런 말을 직접 지껄이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 좋은 분들이지. 좋은 분들이야! 좋은 분들이지만 나한테 아주 각별한 부모님은 아니었어! 왜냐하면 내 여동생은 너무 특별했거든. 맞아, 그분들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큰 딸한테 신경을 써 줄 틈이 없을 정도로는 낯설고 특별했어. 더럽게 특별했다고!”

 “그게 릴리 잘못은 아니잖아?”

 “죄가 아니니까 죄야!”

 내가 내질렀다.

 “그 애한테 죄가 없으니까 죄인 거라고! 이런 망할, 너희처럼 끔찍하게 특별한 인간들은 몰라, 평범하다는 사실이 죄가 되는 순간을 모른다고! 그 애를 보며 난 항상 죄인 같은 기분이었어. 사회에서 패배자로 낙인찍힌 인간이 된 기분, 앞으로 무엇을 하든 릴리처럼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단 말이야. 그래, 그게 릴리 에반스, 그 특별하고도 사랑스러운 계집애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은 아니야! 그 애는 사실 잘못한 게 하나 없어, 언제나 대단했지. 훌륭한 성적, 온통 O로 도배된 성적표, 훤칠한 남자친구, 다정하고 선량하면서도 똑부러지는 성격, 귀여운 애교, 아름다운 낯, 게다가 훌륭한 인망에 졸업 직전엔 그 특별한 인간들 소굴에서 학생회장까지 했어, 오, 멋진 릴리. 멋진 내 동생! 그런데 나는 그 애랑 똑같은 피를 받고 똑같은 가정에서 자랐는데 절대 그 애처럼은 살 수 없단 말이야! 나는 마법이 싫어, 마법사가 싫다고. 단지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세기의 멍청이라는 듯 취급하고 무시하는 너희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이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어!”

 “우린 단 한 번도 당신을 무시한 적이 없어! 제멋대로 피해의식에 젖어서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개소리 하지 마!”

 나는 이제 어이가 없는 것에도 지쳐서 아주 정신 나간 사람을 보듯 시리우스 블랙을 쏘아 봤다.

 “너흰 우리를 머글이라 부르잖아? 멍청이……마법도 모르는 얼간이 머그(mug)라고 비웃고 조롱하면서!”

 “뭐라고?”

 “그런 뜻이 아니라는 개소리는 하지 마! 나도 옛날엔 릴리처럼 될 수 있다고 믿고, 릴리처럼 되고 싶어서 호그와트와 마법세계에 대해 알아보기까지 했으니까! 너희의 그 빌어먹을 머글 타령이——.”

 “아니, 잠시만 기다려, 페투니아. 그런 뜻이었을 리가…….”

 내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아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게 한 시리우스 블랙이 창백하게 질린 짐승처럼 뇌까렸다.

 “이런 빌어먹을, 분명 그랬겠지, 이 망할 늙은이들!”

 듣다못해 나는 그의 손을 강제로 떼어냈다. 이번엔 시리우스 블랙의 손이 낮에 내 손을 강제로 누르던 때처럼 큰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고, 나는 어렵지 않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몰랐다고 지껄여 보게? 잘도 몰랐겠군, 마법사로 태어나서 마법사로 자라신——.”

 “그래, 몰랐어! 그렇지만 몰랐다고 그 모든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그 빌어먹을 미치광이들이 쓰는 단어를 그대로 이어서 사용했지? 어떻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시리우스 블랙은 더 이상 내 말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맴맴 돌며 제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다가 산발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이 잘생겼고 무례한 미치광이가 완벽하게 돌아 버린 것은 아닌지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다. 범죄자 중에 가장 위험한 놈들은 당연히 미친놈들이었다! 한참을 미치광이처럼 서성거리던 시리우스 블랙이 어느 순간 발을 딱 멈추고 시퍼렇게 굳은 석고상 같은 낯으로 싸늘하게 지껄였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굉장한 모멸감을 느껴.”


**


 05.

 상황이 그쯤 되자 나는 다시 한 번 격렬하게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분노를 막지 못했다. 나는 시리우스 블랙의 멱살을 잡아챘다. 나보다 키가 큰 탓에 기껏해야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을 뿐이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빌어먹을 자식의 멱살을 잡아챘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의 면상에 대고 외쳤다.

 “이 정신병자야, 모멸감을 느끼는 건 나야!”

 “그래,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있어, 페투니아.”

 “뭐?”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어. 우리는 언제나 그 빌어먹을 함정에 걸려서 좆같은 — 이 부분에서 나는 시리우스 블랙이 욕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님을 느낌과 동시에 그게 더럽게 안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 단어를 써오고 있었고, 그게 당신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당신의 미움과 분노는 정당해! 내가 당신에게 한 말들은 전부 주제넘고 가치 없는 시비에 불과했고, 당신은 나를 증오할 권리를 지니고 있어. 그렇지만 이번엔 정중하게 부탁하지, 페투니아. 만일 당신이 정말로 단순히 릴리 에반스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 즐기는 게 아니라면——.”

 시리우스 블랙이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쥐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참으로 어이없고도 억울한 말을 지껄이는 그에게 나는 기어코 그 항변을 꺼내고야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그 애가 끔찍하게 밉고 증오스러워도, 그 애를 세상 누구보다도 혐오하고 원망해도, 그 애가 죽길 바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어!”

 “뭐? 갑자기 무슨.”

 “그 망할 년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어서 빌어먹을 녹색 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꼬맹이가 고아가 되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잠시만. 진정해, 페투니아. 난 당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

 “이 망할 미치광이야! 내가 단순히 그 사랑스러운 계집애를 괴롭게 하고 싶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빌어먹을 릴리 년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사람이 마음 놓고 미워하지도 못 하게 만드는 비겁한 년이었다고!”

 시리우스 블랙이 지껄이다 말고 내 주먹에 가슴팍을 얻어맞고 신음을 삼켰다.

 “평생 얼굴은 안 보고 살더라도 어딘가에서 꼴도 안 보고 살았으면 했을 뿐인 거지, 그 이상을 바란 게 아니었다고!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빌어먹을 여동생이, 끔찍하리만치 영리하고 건방지던 제부의 아들을 낳고 그것 때문에 죽길 바란 적도 없었다단 말이야, 이 망할 자식아! 네 귀한 친구라는 제임스 포터 그 빌어먹을 놈이 낳게 한 아들——해리——그 같잖은 꼬맹이 때문에 내 비겁하고 이기적인 여동생이 죽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어!”

 “당신 혹시 아까 늘어져 잘 때 악몽 꿨어? 잠시만……잠시만 페투니아, 당신 지금 우는 거야?”

 “죽여도 내가 죽이지 빌어먹게도 볼드모트한테 살해당하라고 저주한 적은 한 번도 없단 말이야!”

 “오, 이런 젠장. 왜 여자들은 툭하면 울고 난리야! 이 망할 여자야, 볼드모트는 4년 전에 죽었으니 그만 울어!”

 시리우스 블랙은 그렇게 외치면서도 날 붙잡았던 손을 폈다 다시 쥐었다 반복하며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나중에 다시 제대로 사죄하고, 어떻게든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일단 지금은 그런 이상한 상상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진정하는 게 좋겠…….”

 “필요 없으니 썩 꺼져, 쓰레기야! 마법사 따위 세상에서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너흰 정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족속이고…….”

 “망할. 정말 미안하단 말이야! 나는 머글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릴리는 안 죽었고, 볼드모트 그 미치광이야말로 4년 전에 뒈져버렸으니 그놈의 이상한 소리는 그만 좀 지껄여! 괜히 듣는 사람까지 기분 이상해지게 그런 쓸 데 없이 그럴싸한 악몽 얘기는 이제 그만——.”

 “영웅 좋아하시네! 너 영웅이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는지 알아? 영웅은 악당 손에 죽어! 자격 없는 가족은 시체조차 볼 수 없는 외롭고 끔찍한 죽음이었지. 네 친구가 그랬어, 이 뭣도 모르는 망나니야! 네 친구랑 내 여동생이 그랬다고!”

 “오, 제발, 페투니아. 그만 하래도.”

 시리우스 블랙이 질린 어조로 다정스레 권유했다. 나는 지금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줄줄이 입 밖에 쏟아내고 있음을 익히 알고 미쳤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그 말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꼬맹이는 자기 때문에 죽은 엄마의 눈으로 날 증오하듯 원망스레 바라보곤 했다고! 그래, 차라리 그래야지. 릴리처럼 굴지 말고 차라리 그러는 게 나았어, 나는 그 앨 끝까지 미워할 참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내게 말했단 말이야, 자기 때문에 위험해질 테니 도망가라고! 그러면서도 그 정신 나간 꼬마는 영웅이 되겠다고 볼드모트와 전쟁을 하겠다고 그 망할 중늙은이들을 따라서…….”

 나는 갑작스레 목이 메여 왔다. 오, 나는 두들리가 그리워진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목이 꽉 막히고 숨통이 조이는 듯 괴로울 리가 없다. “두들리가 그 빌어먹을 꼬마를 걱정할 지경이었다고, 오, 사랑스러운 내 두들리가…….” 시리우스 블랙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머글이라는 단어를 써온 것에 대해선 일단 사과하지, 페투니아. 그렇지만 또 한 번의 주제 넘는 무례를 저지르자면, 당신 지금 정말 정신 나간 것 같아!” 시리우스 블랙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하고도 난감한 표정으로 날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내 얼빠진 얼굴로 엉망이 되어 울고 있는 나를 슥 훑어보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야, 꿈. 당신이 기절한 사이에 뭔 개꿈을 꿨는지는 몰라도 전혀 가능성 없는 꿈이야.”

 “넌……넌 몰라, 시리우스 블랙. 망할, 모르면서 지껄이지 마!”

 “꿈이래도. 한 숨 푹 자고 나면 흐릿해질 거야. 당신 꿈은 원래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다정스레 지껄이며 시리우스 블랙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날 부축해서 질질 방으로 끌고 갔다. 말투와는 달리 전혀 친절하지 않은 손길에 밀려나며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날 미치광이 취급하지도 마! 나는 미래를 보고 온 게 틀림없다고!”

 “이 망할 여자야, 성 뭉고 병원 정신과에 쳐 넣기 전에 그만 해.” 시리우스 블랙이 짜증스레 말하고는 날 침대에 천천히 눕혔다.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반강제로 침대에 누우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오, 페투니아. 넌 정말 미쳤어. 뭘 믿고 그런 누가 봐도 미친 여자 같을 말들만 지껄이고. 마치 릴리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말을 해? 그 빌어먹을 계집애를! 나는 환멸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불까지 완벽하게 덮어 준 시리우스 블랙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난 일단 당신 덕분에 깨닫게 된 걸 어떻게 해결을 해 봐야겠어.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야. 정말 미안했고, 나중에 다시 이 빚을 갚으러 올게. 그러니까 일단 자. 난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자라고. 당신은 일단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난——제정신——.”

 내가 으르렁거리는 입을 시리우스 블랙이 다시 한 번 틀어막았다. 그는 여전히 고장 난 인간처럼 줄줄 울고 있는 내 얼굴을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 나는 그 잘생긴 면상을 한 대 쳐 주고 싶었다. — 고개를 흔들다가 빈손으로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난 발작적으로 시리우스 블랙의 손을 쳐내고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 개소리였어. 아무 의미 없는 개소리였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이제 좀 내 집에서 꺼져 주지 그래, 이 몰상식한 무뢰한아!”

 “말하지 않아도 갈 거야!” 시리우스 블랙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하고는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두어 번 숨을 고르더니 다시 침착하고도 우아한 낯을 한 채 내게 진지하게 거듭 말했다.

 “정말 미안해, 꼭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제대로 사죄하고 당신이 하라는 대로 뭐든지 할 테니까, 난 일단 더 이상 그 빌어먹을 농간에 홀려 잘못된 단어를 쓰는 사람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겠——.”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개 같은 새끼야!”

 나는 결국 상스러운 소리를 지껄이고는 다시 어린 계집애처럼 엉엉 목 놓아 울어버렸다. 나 자신이 어딘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다. 시리우스 블랙은 꺼지라는데도 꺼지지 않고 안절부절 못 하며 침대 옆을 서성거리다가 베개에 파묻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곧장 무례하고 비겁한 마법사 족속의 손을 쳐냈고, 시리우스 블랙은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 좋아. 일단 당신에겐 진정할 시간이 필요해. 잠 좀 깨고……. 아니, 차라리 자는 게 낫겠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

 “썩 내 집에서 나가!”

 “알겠다니까.” 질린 어조로 날카롭게 대꾸한 시리우스 블랙이 한 걸음 침대에서 물러섰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소리보다도 먼저 펑!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스관이라도 터진 줄 알고 벌떡 일어났던 나는 문이 닫힌 방 안에 오직 나뿐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오, 빌어먹을 마법사. 나는 여전히 내가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아연히 바라보다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욕설을 지껄였다.

 멍청한 페투니아, 왜 그런 미친 소리를 지껄여서는! 나는 모멸감과 회의감, 그리고 어떤 얇은 후회에 사로잡혀 밤새 뺨을 떨며 나 자신을 끔찍하게 혐오스러워 했다. 나는 증오스럽고 경멸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말이다!

 빌어먹을 페투니아, 차라리 릴리 그 계집애를 끝까지 미워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이 멍청한 것아! 또 결국 견디지 못할 거면 무엇 하러 그 계집애가 죽기 전까진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 한 거야!

 그리고, 망할 해리 포터, 빌어먹을 해리 포터. 네가 영웅 따위만 아니었어도 죽지 않았을 네 엄마는 너만의 엄마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 애는 내 여동생이기도 했다고! 그 날, 고드릭 골짜기에서 가족을 잃은 건 네놈뿐만이 아니었단 말이야! 나는 기어코 다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끔찍하게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