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Y 2015. 11. 11. 01:58

 #2. 시리우스 블랙


 01.

 급격한 우울 증세에 버논과도 제대로 만나지 않은 채 집에서 한 달 여를 지내고 나서야 나는 내가 런던에 집 한 채를 놀려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직접 기억해 낸 것은 아니었고, 대체 언제 돌아올 생각이냐는 회사의 독촉 전화를 받고 나서야 기억해낸 것이다. 생각해보면 버논을 만난 것 자체가 런던에서 회사를 다니며 만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무엇 때문에 이 지역으로 다시 내려왔던 거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릴리와 영영 연을 끊겠다고 런던까지 올라가놓고 정작 결혼할 남자가 생기니 릴리 계집애에게 소개시켜 주는 몹시 큰 우를 범했던 것이다. 잘 되살아나지도 않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홀로 끙끙대다가 일단 회사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일이 늘어나기 전에는 올라가겠다고 답장을 주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반년 간의 휴가 요청에도 놀랍도록 납득했다. 그게 의아해서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그제야 기억해냈다. 오, 빌어먹을. 싫은 기억이라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루닝스는 드릴 하나로 꽤 잘 나가는 소득을 벌어들이는 기업이었다. 버논은 이 시기엔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일단 중역이기는 했다. 나는 경리 일을 하고 있었다. 문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문 교육도 받았겠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내가 릴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찾았던 자격증이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복잡한데…….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버논과 사귀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쯤 되던 무렵, 갑자기 스토커가 생겼다. 음, 그러니까 나에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스토커는 아니었고 우리 팀장의 옛 여자였는데, 그녀는 나를 팀장의 현재 여자로 착각하고 원독을 품은 채 쫓아다니고 있었다. 버논과 교제중임을 몇 번이고 밝혔고, 쫓아다녔으니 분명 우리가 데이트 하는 것도 봤을 텐데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는 팀장과 버논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중이었다.

 다행히 이렇다 위험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졌을 때 팀장이 미안한데 잠시만 고향 같은 안전한 곳에 가 있으라며 날 내려 보냈다. 그리고 기억하기론 여름쯤에 그녀의 오해가 해결될 무렵 릴리가 졸업했고, 나는 버논에게 릴리에 대해 고백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청혼을 받았고 우리는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나는 버논에게 릴리를 비롯한 내 가장 끔찍하고 믿을 수 없는 행적에 대해 털어놓기 전에는 그다지 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는데, 버논이 내게 동조해서 그 계집애를 미치광이 취급해 준 그 순간 너무 기뻐서 곧장 그의 제안을 승낙해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 청혼에 그다지 감흥을 못 느껴서, 생각해보니 아직 키스도 못 한 사이였다. 어쩐지 조금씩 옛날과 달라지는 것이 사실 몹시도 불유쾌했다. 그 기억에서의 나는 해리 포터를 제외하면 온전히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있어야 할 악당이 죽어 나자빠진 세계에서 뭘 바란담?

 그러니 어찌 되었든 런던으로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긴 했는데……. 나는 원래 아마 제임스 포터와의 불유쾌한 대화로 인해 엉망으로 저녁식사가 끝난 직후 옳다구나 런던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멍청히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며 지내다가 어차피 타이밍을 놓친 참이었다.

 그렇게 내가 시간을 이상하게 낭비하는 사이 예전엔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릴리의 친구들 — 시리우스 블랙, 리무스 루핀, 피터 페티그루, 세베루스 스네이프, 때로는 앨리스던가 하는 여자애, 그리고 제임스 포터 — 일행이 우리 집에 종종 드나드는 것을 관망해야 했다. 어쩐지 예전엔 없던 일들이 생긴다 했더니 내가 예전엔 하지 않던 일을 한 탓이었다. 아마 릴리의 졸업식 다음날 내가 버논과 데이트를 하는 동안 그들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을 것이고, 내가 런던에 올라간 이후 이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요컨대 내가 그놈의 꿈에 휘둘려 우왕좌왕 한 탓에 나는 ‘마법사’ 족속과 얽히고 만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고향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또다시 릴리와 제임스 포터를 비롯한 그들 특별한 자들의 세계에 끔찍한 환멸과 증오를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릴리 계집애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도 더더욱 내게 친근하게 달라붙으려 했다. 당장이라도 떨어트리고 다시 내 인생의 정궤도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또 막상 그 ‘꿈’이 일종의, 그러니까, 정말로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마법적’이라거나 ‘신비한’ 방식으로 일어난 평행세계에서의 내 인생이었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릴리를 정말로, 몹시 싫어했고, 그 애가 자기 교만 때문에 어떻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다가 죽게 된다면 관심도 없을 테지만 — 사실 자신은 없었다, 해리 포터를 떠올리자면 — 이런 식으로 내가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그냥 돌아가 버리고, 그렇게 릴리가 어느 날 예전처럼 죽어 나타난다면 나는 정말로 일평생 그 애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볼드모트가 죽었다는 세계에서 그 자가 4년 후 내 여동생을 끔찍하게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미친 사람 같았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뭔가 노력이라도 했다는 그런 생색이 필요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덤블도어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릴리가 호그와트에 가던 해, 내가 열네 살이 갓 되었던 그 때. 그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끔찍하게 혐오스러워졌다.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한 증오이기도 했다.

 그 해 여름에, 나는 내 여동생이 ‘마법사’라는 — 어린 꼬마 계집애 입장에서는 굉장히 멋진 —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여타 꼬마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마법이니 영웅이니 하던 것을 믿던 어린애였다. 열네 살이니 머리는 꽤 굵어진 편이었지만 처음엔 부정하던 것이 릴리의 명확한 마법적 재능, 이상한 일들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자 나는 차차 그것에 마음이 휩쓸렸다. 이윽고 나는 릴리가 마법사라면 나도 지당 마법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호그와트에 가지 못한 것이 무언가의 착오라고 여겼다. 릴리에게 이 말을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써서, 부모님이 릴리를 위해 황금으로 만든 마법사의 화폐를 이용해 사 온 부엉이에게 부탁할 셈이었다.

 그걸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훔쳐 읽고 조롱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격이 다른 존재인 마법사와 머글을 동일선상에 놓으려 한다고 나를 비웃고 능멸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경멸하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릴리의 언니일 자격도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자매로 남을 자격이 없는 쪽을 따지자면 내 쪽이 아니라 릴리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마법사가 아니었고 릴리만이 마법사인데, 그것을 두고 내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동생이라곤 하나 있는 릴리 년은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힐난하는 척 하며 내게 그를 용서해주길 호소했다. 릴리 그 계집애가 그 일로 인해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비난한 것은 온전히 내게 용서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아는 릴리 에반스는 “너 정말 잘못했어. 어서 그걸 뉘우치는 게 좋아.”라는 말을 세 번 이상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막내로 태어난 모든 특별한 딸들이 그러하듯 릴리는 애교 넘치고 상냥한 성품을 지닌 사랑스러운 소녀였지만, 적어도 충고했을 때 수정되지 않는 잘못에 있어서는 칼 같은 면이 있었다. 물론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릴리가 처음으로 사귄 마법사 친구였고, 또 그가 릴리에게 껌벅 죽어 몹시도 잘 해준 만큼 릴리에게 있어서 세베루스 스네이프 또한 가장 ‘상냥하고 본성이 착한’ — 얼어 죽을 — 친구였다. 따라서 릴리는 스네이프의 잘못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할 때보다 조금 더 너그럽게 눈감아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야 그것들이 어떤 친구관계를 쌓고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실제로도 릴리는 방학을 할 때마다 내게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머글을 혐오하는’ 자들과 같이 다니며 머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다고 호소하면서도 그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고, 결국 릴리 에반스의 용서가 끝이 난 것은 릴리가 열다섯 되던 그 해에야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에야 평소 곧잘 투덜대던 제임스 포터와 적당히 간을 보다가 열여섯쯤부터 사귀기 시작한 것이나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유난히 너그러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릴리도 그에게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십년을 거슬러 올라오고야 나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인생 또한 감히 날 경멸할 자격 없는 패배자의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여전히 릴리의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인 것과 별개로 그 애는 제임스 포터를 선택했다. 유난히 특별한 인간들끼리 만나, 유난히 특별한 인생을 살다가, 끝내 유난히 특별한 아이를 낳겠지. 그 생각만 하면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요점은, 적어도 우리가 어렸던 그 날에 릴리가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고 시정을 요구했던 것은 그러한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한 아량이 아닌 전적으로 내 용서를 끌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 계집애는 멍청하고 얼빠져 보이면서도 그런 것에 있어서는 눈치 빠르고 약은 면이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르지 않았고, 곧 죽어도 그 자식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빌어먹을 인간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명백하게 말해 그 일을 기점으로 나는 마법사라는 족속이 혐오스러워졌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영광스러워 해도 좋다. 아주 아주 끔찍하게도 말이다.

 내가 그 모든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부엉이를 이용한다는 그, 웃기지도 않는 마법사 족속의 방식으로라도 편지를 쓰고자 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이 편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 편지를 쓰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또다시 문제를 직면했다. 만일 덤블도어에게 여기 어떤 마녀의 언니인 ‘머글’이 — 마법사 따위 전부 죽어버렸으면 — 꿈을 꿨는데 그 꿈이 이러했다고 구구절절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 자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혹은 신뢰라도 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한다는 말인가? 나는 결국 존경하는 덤블도어 선생님께, 라는 첫 문장만 적어 넣었다가 워드 파일을 초기화시켜야 했다.


**


 02.

 내가 릴리 계집애나 제임스 포터 같은 미치광이들처럼 양피지에 깃펜으로 적을 이유는 없으니 그저 잘 하는 타이핑으로 뽑아서라도 둘둘 말아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진도를 뽑지를 못했다. 결국 나는 한참을 자판 위에서 손을 붕 띄운 채 방황하다가 손을 거두고 데스크톱의 전원을 껐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육중한 소음을 내며 진동하던 몸체가 서서히 조용해졌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결단을 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그것은 명백했다. 나는 곧장 짐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어떻게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일이니, 나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어떤 죄책감이나 마음의 빚을 품고 있을 이유가 없다.

 릴리는 날 보더니 런던으로 돌아갈 거냐며 또 흐린 얼굴을 하고 매달렸지만 나는 독살 맞게 그 애에게 면박을 주고 팔을 휙 뿌리친 채 짐 가방을 질질 끌고 나왔다. 오늘도 와 있었던 모양인지 릴리의 뒤를 따라 시리우스 블랙과 리무스 루핀, 피터 페티그루, 그리고 보기 싫은 제임스 포터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릴리의 친구들은 대개 세 패거리로 나뉘어졌는데, 앨리스던가 하는 여자애와 릴리는 쉽게 볼 수 있는 소위 베스트프렌드 같아 보였고, 저 패거리는 제임스 포터에 의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어디에도 섞이지 않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세베루스 스네이프였다. 제임스 포터는 잘 지내보려 하는 것 같지만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성질머리에 그걸 받아들일 리 없었고, 심지어 시리우스 블랙과는 어떤 개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 있는 무리는 제임스 포터 패거리였다. 어느 쪽이건 마법사인 이상 나와는 다시 볼 일 없을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예의상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해주었다.

 “다들 잘 지내. 이제 좀 알겠지만 난 마법사라면 질색이니까 영원히 엮이는 일 없길 바란다, 릴리의 친구들.”

 그리고 나는 휙 돌아서 커다란 짐 가방을 끙끙거리며 끌고 나갔다. 회관 앞에서 한 시간 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중간에 역에서 갈아탄 후 마지막엔 택시로 갈아타면 늦어도 내일 새벽 중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드러내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젠 영영 안녕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질질 끌고 있던 게 휙 가벼워졌다. 깜짝 놀라 잡아당기며 돌아보려 했는데 전혀 당겨지지 않고 오히려 내 팔이 끌려갔다. 갑자기 뭔 일인지 시리우스 블랙이 내 짐 가방을 대신 들고 앞장서고 있었다.

 “너 이게 뭐 하는 거야?”

 “가장 친한 친구의 여자 친구의 누님이 런던으로 돌아간대서 태워주려 하는데?”

 시리우스 블랙이 건방지게 지껄이며 제멋대로 휙 돌아서서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나는 오, 제임스 포터와의 빌어먹을 담화를 떠올리며 빽 내질렀다.

 “그 빌어먹을 동화 속 경주용 빗자루에는 전혀 관심 없——.”

 “포르쉐야. 난 빗자루 타는 걸 저 뿔 난 망아지처럼 즐기지 않는다고.”

 “뭐?”

 “제임스가 차 얘길 하기에 좀 알아봤는데…….”

 나는 이 뜻밖의 발언에 휙 고개를 돌려 제임스 포터를 바라보았다. 제임스 포터는 미지근하게 웃으며 헤실헤실 손을 흔들었다. 자기가 그만큼 노력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 딱 드러나는 행동거지였다. 시리우스 블랙은 제가 말한 그대로 이 동네에서 본 적이 없는 낯선 포르쉐에 다가갔다. 심지어 그것은 포르쉐 924였다——. 평범한 열일곱 열여덟의 청년이 아무렇지 않게 몰고 다닐 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리우스 블랙은 쿵쿵거리며 이상하게 차문을 열다가 겨우 그걸 거칠게 열어젖히고는 휙 짐 가방을 그 안에 내던졌다. 오, 신이시여. 나는 눈앞에 현기증이 도는 것 같아 손등으로 뺨과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언니, 잘 됐다! 시리우스가 데려다 주면 조금 더 편하게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내가 제일 혐오하는 상황이니 입 다물어, 릴리 에반스.

 “도착하면 꼭 전화해요, 누님! 걱정되니까!”

 “내가 같이 가는데?”

 “내가 걱정하는 건 온전히 네가 같이 가기 때문이야, 이 망나니야. 제발 부탁인데 누님 화나게 하지 말고 신경 거스르지 말고…….”

 “내가 너인 줄 알아? 나랑 같이 있는데 기분이 나빠지는 여자 따위 세상엔 없어.”

 “너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끔찍하게 기분이 나쁘니 너희 둘은 닥쳐.”

 내가 사납게 쏘아붙이고는 그의 차에서 내 가방을 끄집어내기 위해 손잡이를 붙들었다. 그때 시리우스 블랙이 반강제로 내 손을 눌렀다. 몹시 짜증스럽게도 내 두 팔은 지팡이 외엔 휘두르는 것이 없을 빌어먹을 마법사의 한 손도 이겨내지 못했다. 나는 휙 소리 나게 다른 녀석들을 돌아봤지만 그들은 날 시리우스 블랙에게 ‘맡기면’ 몹시 안심이 되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굴고 있었다.

 “기다려, 너희들. 대체 내가 왜 이 녀석 — 마법사 나부랭이의 차를 타고.”

 “걸어가려고, 페투니아?”

 “나는 합법적이고 평범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생각이었어! 그리고 이름 부르지 마, 난 에반스야! 더구나 너 릴리 친구잖아? 왜 내게 함부로.”

 “아직 당신한텐 존대를 쓸 가치를 못 느끼겠는걸.”

 시리우스 블랙이 냉소적으로 높낮이 없이 지껄이고는 어서 타라고 문을 연 채로 두고 내 등을 강압적으로 툭툭 밀었다. 오, 정말 이 빌어먹을 ‘마법사’의 차를 타야 하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제임스 포터에게서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장만한 거라면…….

 “그리고 난 합법적으로 거래해서 샀어. 막상 사보니까 이거보단 오토——오토——.”

 “오토바이?”

 “아, 그래. 그게 탐이 나지만. 뭐해, 안 타고?”

 대수롭지 않게 지껄이는 꼴에 나는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차에 올라타야 했다. 물론 그것엔 어깨를 붙잡고 힘을 줘서 누르는 시리우스 블랙의 손속이 한몫했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내게 이러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는데, 창 너머로 릴리가 언니 언니 하며 무슨 이십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이 헤어지는 것처럼 울먹이고 있어서 비위가 상했다. 릴리 계집애를 보느니 시리우스 블랙과 런던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출발해.”

 “어——. 알겠어. 흐음. 잠시만.”

 왠지 모를 불길함이 드는데. 내가 인상을 왈칵 찌푸린 채 운전석을 바라보니 바닥 곳곳을 만지작거리다가 계기판을 쿡쿡 찔러보던 시리우스 블랙이 그제야 제대로 앉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몹시도 끔찍한 예감을 느꼈다.

 “너 면허는 있니?”

 “그게 뭐야?”

 이런 미친 마법사 족속 같으니! 내가 당장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부아앙 소리와 함께 차는 교통안전 규범 따위 무시한 채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이 정신병자야! 속도 줄여! 아니, 당장 차를 세워!” 내가 막 그렇게 외치려는 순간, 불꽃이 공기를 터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리더니 어느 순간 코크워스가 멀어지고 있었다. 뒤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밑으로 아득히 말이다! 아, 세상에, 어머니. 어쩌자고 릴리 같은 계집애를 낳으셨어요!

 마법사 따위 전부 사라졌으면 좋을 텐데! 현기증이 핑 돌고 과도한 스트레스 탓인지 눈앞이 검어졌다. 오,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다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