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Y 2015. 11. 10. 02:47

 버논은 스스로도 심상치 않은 불길함을 느꼈는지 화제를 바꾸기 위해 급히 다른 말을 꺼냈다. 물론 나는 그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가 끝내 어떤 식으로 파국을 맞는지도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꿈처럼 진행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사태는 놀랍게도 꿈과 똑같이 흘러갔다.

 “그……그럼 어디 조금 더 농담을 들어보지. 자네 재능을 발굴해 볼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나? 제임스, 자네, 나에게 그 마—마—마술쟁이.”

 “마법사요?”

 “그, 그래, 그것! 그 문화에 대해 좀 더 설명해보게.”

 “아 아마 머글의 문화와 크게 다르진 않은데.”

 제임스 포터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고심해가며 지껄였지만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버논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결국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결국 마법사에겐 고정수입이 없다 이 말인가?”

 “있는 경우도 있죠. 법원이나 마법부에서 일을 한다면, 아, 치료사도요.”

 “자네는?”

 “오, 그걸 걱정하신 거군요. 감사합니다만 괜찮아요, 형님. 전 부모님이 물려주신 황금이 있어서 아마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다거나 할 것 같아요. 일을 하게 되면 오러 쪽이겠지만 그쪽은 릴리부터 자리를 잡은 다음에——.”

 “황금?”

 버논이 이젠 아예 대놓고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마침 릴리가 덜덜 떠는 손으로 음료를 쏟는 바람에 그걸 정리하던 제임스 포터는 버논의 반응을 살피지 못했다. 릴리 에반스 저 계집애는 남자친구 잘못 데려온 죄로 거의 울 기세였다. 사실 실제로 울기도 했었다. 꿈 속의 이십 년 전에는 아주 펑펑 울었고, 나는 그게 좀 고소했었다.

 “네, 마법사들의 은행은 그린고트라고 하는데 도깨비들이 관리를 하거든요. 믿을만한 족속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셈이 빨라서……. 포터 가문은 마법 세계에선 그럭저럭 인정받는 집안이라 금고에는 황금이 쌓여 있어요. 오, 이 나이 먹도록 아직 제가 직접 버는 수입이 없다는 건 분명 부끄러운 얘기겠지만 적어도 만일의 사태에 릴리나 처형, 그러니까, 누님이나 형님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그건 약속하도록 하죠!”

 “자네 지금 나랑 장난 하자는 건가?”

 “네?”

 “사람이 맞춰주려고 이 정도로 노력을 하면 자네도 응당 맞는 대응을 해야지! 내 살다 살다 자네처럼 무례한 사람은 처음 보는군!”

 그쯤 되자 제임스 포터도 표정을 굳혔다.

 “저야말로 조금 실망이로군요, 형님! 사사건건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아가니 재밌습니까?”

 “납득할만한 말을 지껄여야 믿든 말든 하지!”

 “어느 부분이 납득하기 힘들었죠?”

 제임스 포터가 그 뇌만큼 순수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버논이 내질렀다.

 “전부!”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꿈 속에서 이십 년 전에 이 후 일이 진행되었던 방식을 떠올렸다. 버논은 제임스 포터의 멱살을 잡았고 —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그는 그렇게 했다. —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제임스 포터도 더 이상 저자세를 고수하는 건 내다 버린 모양인지 건방진 얼굴로 버논을 향해 눈을 치켜 떴고 — 그리고 바로 지금 제임스 포터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 버논이 새빨개진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는 순간 — 바로 이 순간 — 릴리가 울음을 터트렸다.

 오, 물론 이 또한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서 말이다. 이젠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릴리에게 내 결혼식에서 들러리라도 설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지껄이면 버논이 제임스 포터에게 저주를 퍼붓고, 제임스 포터는 씨근덕대다가 엉엉 오열하는 릴리를 보며 미안한 얼굴로 연거푸 사과만 하면 완벽했다. 아니, 덧붙이자면 그리고 내 결혼식 피로연에서야 다시 만난 우리가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고 그저 옆에 서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다가, 버논이 피로연 구석에서 제임스 포터를 욕하고 그걸 들은 제임스 포터가 코웃음을 치기만 하면 완벽했다.

 아니! 한 가지 더 덧붙이자! 그 후 내가 저 망할 계집애와 상종도 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여동생이 제부와 함께 악독한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했으며, 이제 한 살인 갓난 조카 녀석이 그 악독한 연쇄살인마를 물리쳤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언제나 특별했던 내 여동생의 최후마저 특별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 끔찍하리만치 동요해서 그 빌어먹을 꼬마를 내 집에 들여놓기로 결심만 하면 완벽했다!

 빌어먹을, 정말 모든 것이 꿈에서 나왔던 그대로였다! 나는 인정했다. 릴리 에반스가 또 하나의 현실, 혹은 다른 가능성의 미래에서는 4년 후에 죽었다고! 나는 홀로 부들부들 떨다가 해리 포터 그 망할 꼬맹이가 우리 집 앞에 버려져 있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왜 너는 끝끝내 나를 그냥 두지를 못하니, 이 망할 것아! 네가 일평생 나를 괴롭게 했다면, 그래서 나한테서 그렇게 욕을 듣고 괴롭힘을 당하고 괄시받았다면 네가 알아서 내 뜻을 따라 멀리해 줬어야 할 것 아니야, 이 이기적인 계집애야! 내게서 부모님을 뺏어가고 자존심과 자신감을 훔쳐가고, 심지어 일반적이고 제대로 된 넓은 사교조차 네년 때문에 전전긍긍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넌 적어도 네 자식 정도는 스스로 간수했어야지! 왜 내가 나의, 너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기 위해 꾸려나갔던 그 완전한 가정에서 너의 눈과 재능을 똑같이 물려받은 그 꼬마를 키워야만 했는지 어디 날 눈앞에 두고 설명을 해보란 말이야! 나는 홀로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울음 섞인 증오를 삼키다가, 내 맞은편에 앉은 릴리 에반스의 눈물 젖은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오, 제발. 신이시여. 왜 제 인생은 이렇게 빌어먹게도 릴리 저 멍청하고 끔찍한 계집애의 들러리인 겁니까? 왜 이 미치도록 특별한 여동생이 내 여동생이었느냐 이 말이야!

 “버논!”

 나는 결국 힘주어 버논의 이름을 불렀다. 당장이라도 싸움질을 시작할 것 같던 버논과 제임스 포터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한 채, 이를 악물고 지껄였다.

 “후식이 녹겠어요. 어서 먹고 집에 가서 쉬는 건 어떨까요!”

 내 말에 한동안 새파래질 정도로 격앙된 얼굴로 파르르 떨던 버논이 제임스 포터의 멱살을 내던지듯 놓아주고는 내 옆에 앉았다. 포크를 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붙들렸던 멱살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쉰 제임스 포터가 릴리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도닥이며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는 것을 보았다. 빌어먹게도 저 무례하고 끔찍한 제부라는 족속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릴리 에반스에게는 끔찍하게 헌신적이었다. 결국 정말로 내가 릴리가 내 결혼식에서 들러리 서는 것을 거부하고, 그 껍질뿐인 가족의 자리에서 릴리의 코와 눈이 빨개진 것을 목격한 제임스 포터는 피로연이 끝날 무렵까지도 버논에게 어떤 시비도 걸지 않았지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처형. 제가 처형의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대체 뭘 안다고! 뭘 안다고 그렇게!

 ‘릴리 때문에 처형이 괴로워하는 건 릴리에게나 처형에게나 끝끝내 좋은 일이 아닐 거예요!’

 아니, 빌어먹을 제임스 포터, 저 망할 망나니는 정말로 전부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구에게도 속속들이 말하지 못했던 이 치졸한 열등감과 비겁한 미움을, 정당하지 못한 비난을 똑똑히 알고 있었으면서 그따위로 내게 지껄였던 것이다! 침착하게 그리 말한 제임스 포터는 뒤도 안 보고 걸어가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릴리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 된 것들이!

 어째서 릴리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었단 말인가? 하다못해 릴리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평범했다면, 그랬다면 그 순간 나는 구원받았을 텐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아이스크림을 파헤쳤다.

 그러나 릴리가 죽고 나는 그 아이를 키웠다. 그 애가 어떻게든 연명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여겼다. 적어도 그게 내 유일한 목적이고 이유였다. 해리 포터를 받아들인 이유 말이다. 그 빌어먹을 제부를 똑같이 닮은 해리 포터를 말이다! 릴리도 제임스 포터도 닮지 말라고, 어떤 동일한 조건도, 그들이 지녀야 했던 어떤 축복도 주지 않은 채 키웠는데, 끝끝내 그 꼬마는 제 아빠의 얼굴, 제 엄마의 눈을 하고, 제 아빠의 목소리로 제 엄마의 말투를 사용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위험하니까 자기랑은 헤어지자고! 부탁이니 이 집을 두고 떠나달라고! 빌어먹을 해리 포터! 빌어먹을 제임스 포터! 빌어먹을 릴리 에반스!

 그들의 특별한 인생이 내 평범함을 비참하고 치졸한 것으로 만들었다! 애써 울음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는 릴리 에반스의 앞에서 나야말로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오, 빌어먹게도 나는 그래서 그들이 싫었다.

 지금도 나는 릴리가 싫고 제임스 포터가 싫고, 어쩌면 미래에 그들이 낳을 해리 포터도 싫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파르르 떨다가 입 안에 아이스크림을 우겨 넣었다.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블루베리 맛이었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릴리 에반스의 언니, 페투니아 에반스의 인생은 이번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